미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한국전쟁 명예 훈장 수여식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랠프 퍼켓 주니어 예비역 대령 가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세형칼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상원만 38년간 역임한 외교의 달인으로 알려져 있다.국내 외교장관, 주미대사를 역임했던 전문가들에게 이번 한미정상회담에 대한 관전평을 물으면 바이든이 자로 잰 듯한 기획물을 관철시켰다고 말한다.특히 3수(修)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만큼 집요함이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이야기한다.어느 대목에 그런 복안이 숨어 있었단 말인가.바이든은 대선캠페인 때부터 백신, 미국 재건, 동맹 복원, 중국 견제 등 4가지를 일관된 국정목표로 제시했다.앞서 미·일정상회담과 마찬가지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서도 그 궤도를 정확히 유지했다고 한다.김성환 전 외교장관은 이번 회담으로 도널드 트럼프 정부 시절 망가진 한미동맹이 복원됐다는 점, 동맹의 차원을 아시아 전체로 넓혔다는 점을 평가한다.한덕수 전 총리(미대사 역임)는 6·25참전용사 훈장수여식에 바이든 옆에 문 대통령이 쪼그리고 앉아 있는 장면은 중공군과 싸운 군인을 영웅화하려고 연출했다고 해석했다.문 대통령은 참전용사 기념비 연설에서 "앞으로도 동맹의 힘이 필요한 순간마다 한국은 변함없이 미국과 함께할 것"이라고 역설했다.외교의 무게중심이 미국 쪽으로 확 기운 느낌이었다.지금껏 한미동맹의 범위는 '북한 위협에 대한 동맹' 정도로 범위가 좁았으나 이번 5·21정상회담 발표를 보면 중~러, 동남아 및 아세아를 포괄하는 글로벌 동맹으로 확장시켰다.미·중 간 패권전쟁에서 바이든 정부는 한국을 요긴하게 써먹은 계산력(?)도 엿보인다.한국의 미사일지침을 42년 만에 폐기해 이제 사거리나 중량을 마음 놓고 개발하도록 풀어준 게 그것이다.이제 800㎞ 제한이 풀렸으므로 중국뿐만 아니라 러시아까지 커버할 수 있게 됐고 더욱이 우주 개발에 동참할 공간을 한국은 확보했다.미국은 중국 견제용 중거리미사일(INF)을 한반도에 배치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은데 한국은 사드 배치 후 당한 트라우마로 OK해주기 어렵다.그런데 미사일지침을 폐지하면 한국이 알아서 중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할 테니 미국으로선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다.문 대통령은 "기쁜 마음으로 미사일주권을 확보했음을 국민에게 보고 드린다"고 감격했다.바이든의 외교기술 앞에 시진핑의 속내는 찌그러졌을 것이다.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소인수 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양국회담 전 한국 여론은 백신 확보가 가장 시급하다고 했다. 일본 스가 총리가 정상회담 후 2000만명분을 확보만큼 해야 본전이었다.그런데 미국 측은 난데없이 한국군 55만명에게 백신 접종을 해준다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수석은 "문재인정부 들어 김정은 눈치 보느라 한미군사훈련을 중단했고 이번엔 코로나를 핑계로 또 안 한다고 할까봐 미리 차단한 고단수가 숨어 있다"고 해석한다.향후 한미합동훈련이 어떻게 되는지를 살펴보면 결말을 알 수 있을 것이다.미국은 한국에 백신 생산(포장)을 맡기는 파트너십으로 때우고 슬쩍 넘어가버렸다. 한국 기업이 44조원 규모의 첨단공장을 지어주는 데 비해 받은 게 없어 손해 본 느낌이다.바이든으로선 미국 재건 전략은 핵심 기술을 확보하고 서플라이체인을 중국과 따로 재구축하면서 한국 기업들이 공장 건설을 해주겠다는 대승리를 거뒀다.한국의 삼성, 현대차, SK, LG 등에 반도체, 전기차배터리, 자동차공장을 짓는 데 44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게 얼마나 기특했는지 CEO들을 백악관 행사에서 일으켜세워 박수를 쳐줬다. 한국에 누가 그렇게 일자리와 공장을 지어준다면 업고 다녀도 이상할 게 없을 것이다.원자력발전소 건설 해외 공동 진출도 눈에 띄었는데 실행하려면 한국에서 탈원전을 먼저 폐기해야 하지 않을까.남북 문제는 대부분 한국인들에게 지금 별로 관심이 없을 터이다.그러나 문 대통령에겐 이것 말고 내세울 만한 치적이 없어 바이든 정부에서 뭔가 더 진행되길 간절히 바란다.그래서 과거 트럼프 정권에서 함께했던 대북정책의 기초인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여전히 바이든 정부의 출발 기점으로 해주길 간절히 바랐다.그걸 간파한 바이든은 그 요구사항을 들어주고 그 대신 김정은이 가장 싫어하는 인권문제를 선언문에 넣도록 주고받기를 했다.이런 걸 조금 들어줌으로써 바이든은 "한국과 일본이 더 싸우지 말고 협력하라"고 요구를 덤으로 얻어냈다.이번 합의문 한 귀퉁이에 한·미·일 3국 협력도 슬쩍 한자락 끼워넣은 게 그것이다.그런데 김정은이 원하는 것은 금강산, 개성공단 재개 같은 현금이 쏙쏙 들어오는 분야이고 이를 한국 측이 분명히 요구했을 텐데 성사에 실패했다.남북 관계 진전은 바이든의 시간표에서 우선순위에 없다는 뜻이다.성 김을 특별대북대표로 임명했는데 그는 오바마 정부 때 북한일을 많이 했던 인물이고 김정은의 창자 속을 꿰뚫어보는 인물이다.북이 달가운 인물이 아니다.바이든은 북·미 관계를 진척시키려면 비핵화 계획표를 가져오라는 걸 분명히 했다.트럼프식으로 정상끼리 만나는 톱다운(Top down)회담은 없다는 다른 표현이다. 한미정상회담 참석차 미국 워싱턴을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인근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국은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대만 문제에 대한 언급을 하지 못하게 한국 측을 겨냥, 협박에 가까운 발언을 했었다.그런데 문 대통령과 바이든 간의 회담 내용은 중국의 엄포를 완전 무시한 듯 대만해협 평화유지를 언급하고, 남지나해 항행의 자유에 대해 공동성언문에 집어넣었다.문 대통령은 기자회견 질의응답에서 바이든에게서 중국에 더 강하게 나가라고 압력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안 받았다"고 해도 그만일 것을 "대만해협의 평화유지는 중요하다는 견해를 함께했다"고 친절하게 보충했다.그 대신 중국이 펄쩍 뛰는 쿼드(Quad)에 한국이 참여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차피 미국도 문재인정부 때는 포기한 듯 아예 제쳐두었다.문 대통령은 '쿼드'라는 단어만 발언하지 않았을 뿐 쿼드를 지지하는 뉘앙스는 여러 곳에서 표했다.한국이 백신 생산을 대폭 늘려 인도·태평양 국가들에 적극 공급하겠다 것도 쿼드를 간접적으로 지지한 내용이다.그밖에도 남지나해 항행자유 지지와 같은 발언은 쿼드 참여에 버금가는 중요한 협력정신을 표방해준 것이다.한미 간 첨단기술 협력, 심지어 원전기술 협력과 공동진출, 5G 나아가 6G까지 공동협력한다는 것은 화웨이, 닝더스다이 등 중국 기업들을 겨낭하겠다는 것이다.우한바이러스가 발생한 경위를 공동조사하자는 내용도 중국으로선 아팠을 것이다.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바이든이 마음껏 외교기술을 발휘할 수 있었던 바탕은 문 대통령이 내년 한국의 대통령선거를 의식해 국민 불안을 달래는 데 일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논리와 무관치 않았을 수 있다.아무튼 이번 한미정상회담 후 북한과 중국은 한국에 적대적 반응은 아직까지는 유보적이다. 차츰 나올 것인데 환영하기는 어려울 터이다.중국은 이번 공동성명에서 미사일 해제를 비롯해 많은 부분에서 친중 분위기가 약화됐다고 느낀다면 시진핑의 서울 답방은 어려울 것이다.북한 김정은은 성 김 특별대표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지켜보겠지만 비핵화 플랜부터 제시하라고 하면 좀체 움직이지 않을 것 같다.장기간 워싱턴특파원을 한 인사는 "이번회담은 바이든의 대승, 문재인의 본전에서 약간 남는정도"로 채점했다.[김세형 고문]▶ '경제 1위' 매일경제, 네이버에서 구독하세요▶ 이 제품은 '이렇게 만들죠' 영상으로 만나요▶ 부동산의 모든것 '매부리TV'가 펼칩니다[ⓒ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