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왕의 귀환’…비트코인 점유율이 최고치 찍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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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리아 0 Comments 47 Views 22-06-01 06:30본문
비트코인 도미넌스 46% ↑…올 들어 최고 수준이더리움·테라·他 알트코인 붕괴 등 영향곧바른 비트코인 투자는 금물…글로벌 증시 살펴야
31일 트레이딩뷰에 따르면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을 나머지 암호화폐 시장과 비교하는 ‘비트코인 도미넌스(BTC.D)’는 46.4%다. 앞서 27일에는 46.55%를 기록해 지난해 10월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사진은 5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크립토스테이션 카페에 있는 비트코인 네온사인. [로이터=연합뉴스]글로벌 가상자산(암호화폐) 시장이 루나 사태 등의 악재로 싸늘하게 식었다지만 ‘대장주’ 비트코인은 다른 코인보다 적은 낙폭을 보이며 선방했다.코인마켓캡에 따르면 31일 오후 5시 기준 올해 1월 1일 대비 비트코인은 29.56% 하락했다. 주식 시장과 비교하면 큰 낙폭이지만, 같은 기간 이더리움이 44.67% 떨어지고, 리플은 48.2%, 솔라나는 71.95%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선방한 셈이다.
비트코인 vs 알트코인 도미넌스 비교코인 시장 폭락 중 그나마 선방한 비트코인은 시장 지배력도 늘리고 있다. 지난달 31일 트레이딩뷰에 따르면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을 나머지 암호화폐 시장과 비교하는 ‘비트코인 도미넌스(BTC.D)’는 46.4%를 나타냈다. 앞서 지난달 27일에는 46.55%를 기록해 지난해 10월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올해 초만 해도 37~38%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지난 수 개월간 다른 알트코인(비트코인 외의 코인)으로 몰렸던 투자자들의 관심이 다시 비트코인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멀어지는 이더리움 ‘머지’
이더리움(ETH) 도미넌스. [사진 트레이딩뷰]이처럼 비트코인이 암호화폐 시장에서 지배력을 되찾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시총 기준 가장 큰 알트코인인 이더리움(ETH)의 약세다. 이더리움은 지난 5개월 동안 시장 지배력이 지속해서 하락하며지난해 12월 약 22%에서 이달 18% 수준으로 급락했다. 비트코인과 정확히 반대 흐름을 보였다.이더리움은 지난 몇 년 동안 활용 범위를 넓히고 거래비용을 저렴하게 만들기 위해 ‘머지(Merge)’라는 업그레이드 작업을 준비해왔다. 머지를 통해 기존의 작업증명(PoW) 방식 대신 지분증명(PoS) 방식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지분증명 방식으로 전환되면 보다 컴퓨팅 자원을 덜 소모해 친환경적이고, 가스비(수수료)도 상대적으로 저렴해진다. 이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감으로 한때 가격 상승률이 비트코인을 능가하기도 했다.그러나 이더리움의 지분증명 전환 업그레이드는 여러 차례 지연됐다. 이더리움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을 비롯해 여러 개발자는 2020년부터 ‘이더리움 2.0’을 주창했지만 가장 첫 단계인 지분증명 전환도 완성되지 못했다. 올해의 경우 코빗 리서치센터를 비롯해 여러 기관이 6월 이전에 지분증명 전환을 예상했지만 빗나갔다.지난달 26일(현지시간) 개인 암호화폐 분석가 OxHamZ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투자자들이 이미 (이더리움) 네트워크 업그레이드 ‘과대광고’에 가격을 책정했다”며 “이 때문에 머지 업데이트 이후에도 이더리움의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99.99%’ 테라의 몰락
USTC(위)와 LUNC의 올해(YTD) 가격 추이. [사진 코인마켓캡]루나(LUNC)와 테라USD(USTC)의 붕괴는 여러 투자자에게 고통을 안겼지만, 비트코인의 지배력에는 호재로 작용했다. 이달 기준 비트코인에 대한 루나의 강세를 측정하는 지표인 LUNC/BTC의 가치는 99.99% 급락한 0.00000004로 사실상 가치가 없어졌다.한때 시총 10위 안에 들었던 두 코인이 몰락하는 과정을 본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비트코인 거래량도 곱절이 넘게 늘었다. 루나 가격이 급락하기 전 사흘 간(5월 7~9일) 비트코인 평균 거래량은 273억 달러(약 33조7837억원)였던 반면, 이후 사흘(5월 10~12일) 평균 거래량은 594억(약 73조5075억원) 달러였다.━알트코인들의 ‘떼죽음’
2022년 급락한 알트코인. 형광색 박스 안은 최고 가격 대비 하락률로 대부분 80% 이상 하락했다. [사진 메사리]다른 알트코인들의 가격 폭락은 비트코인보다 더욱 심했다. 전체 알트코인 시장은 지난해 11월 1조7000억 달러(약 2014조원)를 돌파했지만, 지난달 31일에는 약 60% 하락한 6920억 달러(약 856조원)를 기록했다. 대다수 가격이 사상 최고치(ATH)에서 80% 이상 하락한 상황이다.알트코인을 기반으로 생성되는 대체불가능토큰(NFT)의 인기도 사그라드는 분위기다. 주요 NFT 마켓플레이스의 지난달 30일 기준 월간 거래량은 40억 달러로 지난 1월 대비 75% 줄었다. BAYC와 엑시인피니티(AXS) NFT 등 규모가 거대한 NFT의 거래량이 크게 감소했다.암호화폐 전문매체 코인텔레그래프는 “이는 NFT에서 스테이블코인이나 비트코인, 현금 등으로 투자자들이 이탈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설명했다.━비트코인 지금 투자?…“주식과 커플링 주의”최근 비트코인이 알트코인에 비해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무조건적인 투자는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여전히 전 세계 중앙은행의 긴축 정책·금리 인상, 지정학적 갈등, 가파른 인플레이션 등 많은 거시경제 요소가 쌓여있기 때문이다.
S&P500과 비트코인의 상관도. [사진 블룸버그]무엇보다 지난 수개월 동안 비트코인은 주식과 함께 움직이는 ‘커플링(동조화)’ 경향이 심해졌다. 비트코인과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500의 상관도를 보여주는 지수는 지난해 5월 0.15 수준이었으나 지난달 27일 기준 0.73을 기록했다. 숫자가 높을수록 시세가 같이 움직인다는 의미다. 따라서 비트코인 투자의 적기를 찾기 위해선 글로벌 증시를 주시하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한편 ‘고래’로 불리는 암호화폐 큰 손들이 최근 비트코인을 빠르게 거래소로 옮기고 있어 대규모 매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줄리오 모레노 크립토퀀트 수석애널리스트는 “과거 고래들이 이 속도로 거래소로 코인을 옮기고 있을 때 가격 조정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31일 트레이딩뷰에 따르면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을 나머지 암호화폐 시장과 비교하는 ‘비트코인 도미넌스(BTC.D)’는 46.4%다. 앞서 27일에는 46.55%를 기록해 지난해 10월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사진은 5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크립토스테이션 카페에 있는 비트코인 네온사인. [로이터=연합뉴스]글로벌 가상자산(암호화폐) 시장이 루나 사태 등의 악재로 싸늘하게 식었다지만 ‘대장주’ 비트코인은 다른 코인보다 적은 낙폭을 보이며 선방했다.코인마켓캡에 따르면 31일 오후 5시 기준 올해 1월 1일 대비 비트코인은 29.56% 하락했다. 주식 시장과 비교하면 큰 낙폭이지만, 같은 기간 이더리움이 44.67% 떨어지고, 리플은 48.2%, 솔라나는 71.95%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선방한 셈이다.
비트코인 vs 알트코인 도미넌스 비교코인 시장 폭락 중 그나마 선방한 비트코인은 시장 지배력도 늘리고 있다. 지난달 31일 트레이딩뷰에 따르면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을 나머지 암호화폐 시장과 비교하는 ‘비트코인 도미넌스(BTC.D)’는 46.4%를 나타냈다. 앞서 지난달 27일에는 46.55%를 기록해 지난해 10월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올해 초만 해도 37~38%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지난 수 개월간 다른 알트코인(비트코인 외의 코인)으로 몰렸던 투자자들의 관심이 다시 비트코인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멀어지는 이더리움 ‘머지’
이더리움(ETH) 도미넌스. [사진 트레이딩뷰]이처럼 비트코인이 암호화폐 시장에서 지배력을 되찾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시총 기준 가장 큰 알트코인인 이더리움(ETH)의 약세다. 이더리움은 지난 5개월 동안 시장 지배력이 지속해서 하락하며지난해 12월 약 22%에서 이달 18% 수준으로 급락했다. 비트코인과 정확히 반대 흐름을 보였다.이더리움은 지난 몇 년 동안 활용 범위를 넓히고 거래비용을 저렴하게 만들기 위해 ‘머지(Merge)’라는 업그레이드 작업을 준비해왔다. 머지를 통해 기존의 작업증명(PoW) 방식 대신 지분증명(PoS) 방식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지분증명 방식으로 전환되면 보다 컴퓨팅 자원을 덜 소모해 친환경적이고, 가스비(수수료)도 상대적으로 저렴해진다. 이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감으로 한때 가격 상승률이 비트코인을 능가하기도 했다.그러나 이더리움의 지분증명 전환 업그레이드는 여러 차례 지연됐다. 이더리움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을 비롯해 여러 개발자는 2020년부터 ‘이더리움 2.0’을 주창했지만 가장 첫 단계인 지분증명 전환도 완성되지 못했다. 올해의 경우 코빗 리서치센터를 비롯해 여러 기관이 6월 이전에 지분증명 전환을 예상했지만 빗나갔다.지난달 26일(현지시간) 개인 암호화폐 분석가 OxHamZ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투자자들이 이미 (이더리움) 네트워크 업그레이드 ‘과대광고’에 가격을 책정했다”며 “이 때문에 머지 업데이트 이후에도 이더리움의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99.99%’ 테라의 몰락
USTC(위)와 LUNC의 올해(YTD) 가격 추이. [사진 코인마켓캡]루나(LUNC)와 테라USD(USTC)의 붕괴는 여러 투자자에게 고통을 안겼지만, 비트코인의 지배력에는 호재로 작용했다. 이달 기준 비트코인에 대한 루나의 강세를 측정하는 지표인 LUNC/BTC의 가치는 99.99% 급락한 0.00000004로 사실상 가치가 없어졌다.한때 시총 10위 안에 들었던 두 코인이 몰락하는 과정을 본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비트코인 거래량도 곱절이 넘게 늘었다. 루나 가격이 급락하기 전 사흘 간(5월 7~9일) 비트코인 평균 거래량은 273억 달러(약 33조7837억원)였던 반면, 이후 사흘(5월 10~12일) 평균 거래량은 594억(약 73조5075억원) 달러였다.━알트코인들의 ‘떼죽음’
2022년 급락한 알트코인. 형광색 박스 안은 최고 가격 대비 하락률로 대부분 80% 이상 하락했다. [사진 메사리]다른 알트코인들의 가격 폭락은 비트코인보다 더욱 심했다. 전체 알트코인 시장은 지난해 11월 1조7000억 달러(약 2014조원)를 돌파했지만, 지난달 31일에는 약 60% 하락한 6920억 달러(약 856조원)를 기록했다. 대다수 가격이 사상 최고치(ATH)에서 80% 이상 하락한 상황이다.알트코인을 기반으로 생성되는 대체불가능토큰(NFT)의 인기도 사그라드는 분위기다. 주요 NFT 마켓플레이스의 지난달 30일 기준 월간 거래량은 40억 달러로 지난 1월 대비 75% 줄었다. BAYC와 엑시인피니티(AXS) NFT 등 규모가 거대한 NFT의 거래량이 크게 감소했다.암호화폐 전문매체 코인텔레그래프는 “이는 NFT에서 스테이블코인이나 비트코인, 현금 등으로 투자자들이 이탈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설명했다.━비트코인 지금 투자?…“주식과 커플링 주의”최근 비트코인이 알트코인에 비해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무조건적인 투자는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여전히 전 세계 중앙은행의 긴축 정책·금리 인상, 지정학적 갈등, 가파른 인플레이션 등 많은 거시경제 요소가 쌓여있기 때문이다.
S&P500과 비트코인의 상관도. [사진 블룸버그]무엇보다 지난 수개월 동안 비트코인은 주식과 함께 움직이는 ‘커플링(동조화)’ 경향이 심해졌다. 비트코인과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500의 상관도를 보여주는 지수는 지난해 5월 0.15 수준이었으나 지난달 27일 기준 0.73을 기록했다. 숫자가 높을수록 시세가 같이 움직인다는 의미다. 따라서 비트코인 투자의 적기를 찾기 위해선 글로벌 증시를 주시하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한편 ‘고래’로 불리는 암호화폐 큰 손들이 최근 비트코인을 빠르게 거래소로 옮기고 있어 대규모 매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줄리오 모레노 크립토퀀트 수석애널리스트는 “과거 고래들이 이 속도로 거래소로 코인을 옮기고 있을 때 가격 조정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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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금성면 탑리리 오층석탑 뒤로 별이 쏟아진다. 절에 관한 기록은 없이 탑만 홀로 우뚝해 금성면에는 '탑리'를 상호로 쓰는 점포가 유난히 많다.세상에는 보고도 믿지 못할 것들이 수두룩하다. 자료가 빈약해 제대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과학적 해석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이해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흔히 ‘탑리’라 부르는 의성 금성면은 지질과 고대 인류의 무수한 수수께끼를 품고 있는 곳이다.
의성 금성면 여행 지도. 그래픽=성시환 기자시간을 거스른 듯한 ‘탑리’ 풍경먼저 탑리역으로 간다. 중앙선 무궁화호 열차가 상·하행선에 각 4회 정차하는 시골역이지만, 외형은 흔히 떠올리는 간이역과 다르다. 벽돌을 쌓은 흉내를 냈지만 탑도 아니고 성도 아닌 콘크리트 외벽이다. 멋진 작품을 구상했다가 서둘러 마무리한 듯한 느낌이다. 역이 위치한 곳은 금성면 소재지이지만 현지인도 외지인도 ‘금성’보다는 ‘탑리’가 익숙하다. 학교 우체국 약국 꽃집 다방 식당 등 마을의 점포 이름에도 ‘탑리’가 대세다. 모두가 시장 뒤편 야트막한 둔덕에 우뚝 선 석탑에 대한 헌사다.
의성 탑리역. 탑 모양을 본딴 것 같은데 석성처럼 보인다.
탑리리 오층석탑 주변은 공원처럼 정비해 놓았지만, 찾는 이들이 많지 않다.
시골 동네는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어둠이 내리고 밤하늘에 별이 총총 박힌다. 감실이 있는 남쪽에서 석탑을 보면 북극성이 정면으로 걸린다.낮은 기단에 간결한 몸매, 국보로 지정된 탑의 공식 명칭은 ‘탑리리 오층석탑’이다.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전탑과 목조건축의 특징을 동시에 보여주는 구조다. 응회암을 얇게 잘라 층층으로 쌓은 모양새며, 1층 몸돌에 불상을 모시는 감실을 설치하고, 아래위로 층을 이룬 지붕돌은 전형적인 전탑 양식이다. 지붕돌의 네 귀퉁이가 살짝 들린 건 목조건축에 쓰이는 기법이다.탑이 세워진 것은 7세기 중엽,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된다. 순수한 불심으로 돌을 다듬고 한 층 한 층 정성스럽게 쌓았을 그 옛날 석공의 마음은 헤아릴 길이 없다. 주변 터는 제법 넓지만 절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모든 시선은 탑에 모아진다. 자체로 하나가 절인 셈이다. 동네 소공원처럼 깔끔하게 정비해 놓았지만 찾는 이가 드물다. 그럼에도 상호와 지명으로 ‘탑리’를 활용하고 있으니 주민들에게는 생활 신앙이나 마찬가지다.
시간을 거스른 듯한 의성 탑리 풍경. 간판에 두 자리 전화 국번이 그대로인 점을 보면 세탁소 영업은 하지 않는 듯하다.
사진관도 영업을 하지 않지만 간판을 그대로 달고 있다.
동네 사랑방 겸 갤러리로 활용하고 있는 탑리 버스터미널.
탑리버스터미널 내부. 넓은 칠판에 대구와 춘산행 버스 각 3편의 시간표만 적혀 있다.석탑으로 가는 골목은 상가가 몰려 있는 시장통이다.시간을 거스른 듯한 시골 장터의 모습 또한 이 탑을 닮았다. 색이 바랜 간판을 달고 있는 ‘서울세탁소’ ‘송도사진관’은 문을 닫은 듯하다. 고춧가루와 미숫가루 빻고 참기름에 홍화기름까지 짜는 ‘맛나떡집’, 들밥(들판에서 일하는 농부에게 배달하는)까지 취급하는 ‘땡볕식당’은 일인다역을 마다하지 않는 시골 가게의 역할을 톡톡히 소화해내고 있다. 대구행과 춘산행 각 3편의 버스만 다니는 터미널은 차마 문을 닫지 못하고 동네 사랑방 겸 지역 사진가의 갤러리로 변했다. 그래도 8,000원으로 푸짐한 뷔페, 6,500원으로 든든한 비빔밥과 칼국수 식당까지 있으니 아쉬울 게 없는 지역의 중심이다. 공룡 발자국 옆 잊힌 왕국의 고분군인근에는 탑리리 오층석탑보다 더 수수께끼 같은 유적도 있다. 탑리에서 의성으로 이어지는 도로 왼쪽에 여러 기의 대형 봉분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의성 금성면 고분군’이 정식 명칭이지만 주로 ‘조문국사적지’로 불린다. 조문국(召文國)은 웬만큼 역사를 꿰고 있는 사람에게도 낯설다. 기록이 많지 않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벌휴이사금 원년(185)에 신라에 복속했다고 짧게 언급된 정도다.삼한시대 의성 지역에서 번성했던 부족국가로 추정할 뿐이다. 그럼에도 유적은 풍성해 금성면 대리리, 탑리리, 학미리 일대에서 발견된 크고 작은 고분이 370기가 넘는다. 1960년부터 시작한 발굴조사에서 금동 장신구와 철제 무기류, 마구류 등이 출토됐다. 조문국은 2세기 말에 막을 내렸지만 무덤은 4~6세기 것으로 보고 있다.
탑리 인근의 의성 조문국사적지. 38기를 정비한 고분군 사이로 산책로를 조성해 놓았다. 뒤편에 보이는 산이 금성산이다.
의성 조문국사적지 나무 그늘에서 여행객이 의자를 펴고 쉬고 있다. 소풍처럼 가볍게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의성 조문국사적지. 경덕왕릉에만 비석이 세워져 있다.의문투성이 시간의 간극을 덮기 좋은 재료는 전설이다. 대표 고분인 조문국 경덕왕릉(신라 경덕왕이 아니다) 발견 과정이 조선 숙종 때 학자인 미수 허목의 문집에 기록돼 있다. 한 농부가 오이밭에서 커다란 구멍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석실 한가운데에 금관을 쓴 인물상이 있었다. 탐을 낸 농부의 손은 금관에 그대로 붙어버렸다. 그날 밤 의성현령의 꿈에 경덕왕이 나타나 정체를 밝혔고, 이후 봉분을 쌓고 관리했다고 한다. 실제 영조 원년(1725) 경덕왕릉을 증축하고 그때부터 지내온 왕릉 제사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현재 조문국사적지에는 38기의 고분을 정비해 공원처럼 꾸며 놓았다. 능선은 야트막하고 봉분을 따라 연결된 산책로는 물결처럼 부드럽다. 소풍하듯 가볍게 둘러볼 수 있다.군데군데 소나무 몇 그루를 남겨 두었지만 무덤이라는 특성상 그늘이 부족하다. 요즘 같은 날에는 양산이 필수다. 해 질 무렵 방문하면 2,000년 잠에서 깨어난 ‘잊힌 왕국’의 미스터리가 더 신비스럽게 다가온다.
일제강점기에 세운 문익점면작기념비. 의성현감으로 부임한 문익점의 손자가 일대에서 면화 재배를 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의성 조문국사적지 인근의 작약밭. 뿌리부터 꽃잎까지 약재로 쓰는 작물이라 요즘 의성의 특산품이다.주차장 부근에 ‘문익점면작기념비’가 있다. 1935년 일제강점기에 목화 재배를 독려하기 위해 세웠다.문익점이 장인과 함께 목화를 시험 재배한 곳은 고향인 산청인데 이곳에 비석이 선 이유는 뭘까. 조선 태종 때 그의 손자 문승로가 의성현감으로 부임해 일대에서 면화를 재배했다니 전혀 뜬금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의성은 목화 대신 작약의 주산지다. 끝물이지만 조문국사적지와 들판 곳곳에서 소담스러운 작약을 볼 수 있다. 고분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인류의 역사를 무색하게 하는 공룡 유적이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산지’다. 약 1억1,0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 중기에 형성된 경상분지의 하천과 범람원 퇴적층에 300개 이상의 공룡 발자국이 선명하다. 높이 30m 경사진 암반에 작게는 지름 10cm, 큰 것은 90cm나 되는 발자국이 무더기로 모여 있다. 4종류 12마리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밀집도에서 국내 최고 수준이다. 발의 크기, 보폭, 걷는 방향을 알 수 있어서 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의성 조문국사적지 인근 도로변의 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 도로공사를 하다가 발견됐다.
의성 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에 커다란 공룡발자국이 선명하다.공룡발자국은 1998년 지방도로 확장 공사 중 산허리를 깎아내면서 발견됐다. 때문에 관람 환경은 좋지 않다. 길가에 임시로 차를 댈 공간이 있을 뿐 공식 주차장이 없다. 차량 통행이 적어 다행이지만 무단으로 도로를 건너야 할 형편이어서 주의가 필요하다.30도 날씨에도 등골 서늘, 빙계계곡탑리에서 약 10㎞ 떨어진 빙계계곡 역시 오래된 자연의 신비다. 얼음구멍(氷穴)과 바람구멍(風穴)에서 한여름에도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찬바람이 술술 새나온다. 경사면에 쌓인 암괴 틈에 저장된 찬 공기가 여름철에 외부의 더운 공기와 만나 물방울과 얼음을 만드는 자연현상이라 설명한다. 과학적으로 깊이 파고들수록 이해하기 더 어렵다.최소 6,500만 년 전에 만들어진 지형이라니 인간의 역사로 가늠할 수 없는 세월이다.
의성 빙계계곡 전경. 사진 오른쪽 아래 빙계서원에서부터 시작된다.
의성 빙계계곡 입구 물레방아에 시원하게 물이 쏟아지고 있다.
의성 빙계계곡 주변 바위 틈마다 찬바람이 감지된다.입구의 빙계서원부터 상류의 풍혈까지는 약 500m, 계곡과 나란한 길을 걷기만 해도 도로변 바위틈에서 새나오는 찬바람이 감지된다. 한여름이면 자리싸움이 치열할 듯하다. 가장 차가운 빙혈은 마을 뒤편에 위치한다. 훼손을 막기 위해 콘크리트 구조물을 설치해 내부는 눈으로만 볼 수 있다. 지난달 27일, 낮 기온은 30도에 육박하는데 안에 매달아 놓은 온도계는 1.9~2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냉장고보다 차가운 곳이다. 신비로운 현상에 그럴듯한 이야기가 보태지는 건 기본이다. 춘원 이광수는 ‘원효대사’에서 무열왕의 둘째 딸 요석공주가 유월 염천에 젖먹이 아들 설총을 데리고 지아비인 원효대사를 만나기 위해 빙혈을 찾은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공주는 좁은 굴 속을 더듬더듬 기어 들어갔다. 이리 꼬불 저리 꼬불 몇 굽이를 지나 얼마나 들어갔는지 모른다. 점점 추워졌다. 공주는 전신이 꽁꽁 어는 듯하였다.”
의성 빙계계곡의 빙혈 내부. 들어갈 수 없고 볼 수만 있다.
빙계계곡 빙혈 내부 온도계가 1.9도를 가리키고 있다.
의성 빙계계곡의 풍혈. 표시된 곳뿐만 아니라 일대 바위 틈이 모두 바람 구멍이다.
빙혈 앞 빙계사지 오층석탑. 빙혈은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이야기를 품고 있다.빙혈 앞에는 탑리의 것과 꼭 닮은 빙계사지 오층석탑이 매끈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문화재적 가치는 한 수 아래인 보물로 지정돼 있지만, 주변 산세와의 조화는 오히려 뛰어나다. 빙계계곡 가는 길의 산운마을은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영천 이씨 집성촌으로, 한옥과 돌담으로 어우러진 정취가 고즈넉하다. 마을 중앙에 운곡당이 자리 잡고 있다. 영월부사를 지낸 이희발의 집이라고 한다.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한 가벽(내외담)과 향나무, 정갈한 마당과 마루에 양반가의 기품이 배어 있다. 뒷마당 담장 너머로는 삿갓처럼 봉긋한 금성산이 우람하면서도 아늑하다.이웃한 소우당은19세기 초에 지었는데,높은 담장으로 둘러진 별당 정원이 자랑이다. 상수리 산수유 대나무 소나무 단풍나무 등이 시원하게 그늘을 드리운다. 특히 아름드리로 자란 측백나무 두 그루는 흔치 않은 조경수다. 석축으로 구불구불하게 쌓은 연못에 후원의 그윽한 정취가 담긴다.
금성산(왼쪽)과 비봉산을 병풍 삼아 자리 잡은 영천 이씨 집성촌이다.
의성 산운마을의 대표 양반가인 운곡당.
수목이 가득한 산운마을 소우당 후원.
폐교를 개조한 산운생태공원 어린이 동상 위에 참새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뒤편의 금성산이 보인다.
의성 산운생태공원에 설치된 공룡 모형. 잠시 공룡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진다.마을 앞 산운생태공원 곳곳에는 공룡 모형을 설치해 놓았다. 이질적일 법도 한데 마을을 감싸고 있는 금성산과 비봉산 능선과 묘하게 조화롭다. 금성산은 약 7,0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분화한 화산이다. 역시 미스터리 의성이다.
의성 금성면 탑리리 오층석탑 뒤로 별이 쏟아진다. 절에 관한 기록은 없이 탑만 홀로 우뚝해 금성면에는 '탑리'를 상호로 쓰는 점포가 유난히 많다.세상에는 보고도 믿지 못할 것들이 수두룩하다. 자료가 빈약해 제대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과학적 해석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이해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흔히 ‘탑리’라 부르는 의성 금성면은 지질과 고대 인류의 무수한 수수께끼를 품고 있는 곳이다.
의성 금성면 여행 지도. 그래픽=성시환 기자시간을 거스른 듯한 ‘탑리’ 풍경먼저 탑리역으로 간다. 중앙선 무궁화호 열차가 상·하행선에 각 4회 정차하는 시골역이지만, 외형은 흔히 떠올리는 간이역과 다르다. 벽돌을 쌓은 흉내를 냈지만 탑도 아니고 성도 아닌 콘크리트 외벽이다. 멋진 작품을 구상했다가 서둘러 마무리한 듯한 느낌이다. 역이 위치한 곳은 금성면 소재지이지만 현지인도 외지인도 ‘금성’보다는 ‘탑리’가 익숙하다. 학교 우체국 약국 꽃집 다방 식당 등 마을의 점포 이름에도 ‘탑리’가 대세다. 모두가 시장 뒤편 야트막한 둔덕에 우뚝 선 석탑에 대한 헌사다.
의성 탑리역. 탑 모양을 본딴 것 같은데 석성처럼 보인다.
탑리리 오층석탑 주변은 공원처럼 정비해 놓았지만, 찾는 이들이 많지 않다.
시골 동네는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어둠이 내리고 밤하늘에 별이 총총 박힌다. 감실이 있는 남쪽에서 석탑을 보면 북극성이 정면으로 걸린다.낮은 기단에 간결한 몸매, 국보로 지정된 탑의 공식 명칭은 ‘탑리리 오층석탑’이다.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전탑과 목조건축의 특징을 동시에 보여주는 구조다. 응회암을 얇게 잘라 층층으로 쌓은 모양새며, 1층 몸돌에 불상을 모시는 감실을 설치하고, 아래위로 층을 이룬 지붕돌은 전형적인 전탑 양식이다. 지붕돌의 네 귀퉁이가 살짝 들린 건 목조건축에 쓰이는 기법이다.탑이 세워진 것은 7세기 중엽,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된다. 순수한 불심으로 돌을 다듬고 한 층 한 층 정성스럽게 쌓았을 그 옛날 석공의 마음은 헤아릴 길이 없다. 주변 터는 제법 넓지만 절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모든 시선은 탑에 모아진다. 자체로 하나가 절인 셈이다. 동네 소공원처럼 깔끔하게 정비해 놓았지만 찾는 이가 드물다. 그럼에도 상호와 지명으로 ‘탑리’를 활용하고 있으니 주민들에게는 생활 신앙이나 마찬가지다.
시간을 거스른 듯한 의성 탑리 풍경. 간판에 두 자리 전화 국번이 그대로인 점을 보면 세탁소 영업은 하지 않는 듯하다.
사진관도 영업을 하지 않지만 간판을 그대로 달고 있다.
동네 사랑방 겸 갤러리로 활용하고 있는 탑리 버스터미널.
탑리버스터미널 내부. 넓은 칠판에 대구와 춘산행 버스 각 3편의 시간표만 적혀 있다.석탑으로 가는 골목은 상가가 몰려 있는 시장통이다.시간을 거스른 듯한 시골 장터의 모습 또한 이 탑을 닮았다. 색이 바랜 간판을 달고 있는 ‘서울세탁소’ ‘송도사진관’은 문을 닫은 듯하다. 고춧가루와 미숫가루 빻고 참기름에 홍화기름까지 짜는 ‘맛나떡집’, 들밥(들판에서 일하는 농부에게 배달하는)까지 취급하는 ‘땡볕식당’은 일인다역을 마다하지 않는 시골 가게의 역할을 톡톡히 소화해내고 있다. 대구행과 춘산행 각 3편의 버스만 다니는 터미널은 차마 문을 닫지 못하고 동네 사랑방 겸 지역 사진가의 갤러리로 변했다. 그래도 8,000원으로 푸짐한 뷔페, 6,500원으로 든든한 비빔밥과 칼국수 식당까지 있으니 아쉬울 게 없는 지역의 중심이다. 공룡 발자국 옆 잊힌 왕국의 고분군인근에는 탑리리 오층석탑보다 더 수수께끼 같은 유적도 있다. 탑리에서 의성으로 이어지는 도로 왼쪽에 여러 기의 대형 봉분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의성 금성면 고분군’이 정식 명칭이지만 주로 ‘조문국사적지’로 불린다. 조문국(召文國)은 웬만큼 역사를 꿰고 있는 사람에게도 낯설다. 기록이 많지 않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벌휴이사금 원년(185)에 신라에 복속했다고 짧게 언급된 정도다.삼한시대 의성 지역에서 번성했던 부족국가로 추정할 뿐이다. 그럼에도 유적은 풍성해 금성면 대리리, 탑리리, 학미리 일대에서 발견된 크고 작은 고분이 370기가 넘는다. 1960년부터 시작한 발굴조사에서 금동 장신구와 철제 무기류, 마구류 등이 출토됐다. 조문국은 2세기 말에 막을 내렸지만 무덤은 4~6세기 것으로 보고 있다.
탑리 인근의 의성 조문국사적지. 38기를 정비한 고분군 사이로 산책로를 조성해 놓았다. 뒤편에 보이는 산이 금성산이다.
의성 조문국사적지 나무 그늘에서 여행객이 의자를 펴고 쉬고 있다. 소풍처럼 가볍게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의성 조문국사적지. 경덕왕릉에만 비석이 세워져 있다.의문투성이 시간의 간극을 덮기 좋은 재료는 전설이다. 대표 고분인 조문국 경덕왕릉(신라 경덕왕이 아니다) 발견 과정이 조선 숙종 때 학자인 미수 허목의 문집에 기록돼 있다. 한 농부가 오이밭에서 커다란 구멍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석실 한가운데에 금관을 쓴 인물상이 있었다. 탐을 낸 농부의 손은 금관에 그대로 붙어버렸다. 그날 밤 의성현령의 꿈에 경덕왕이 나타나 정체를 밝혔고, 이후 봉분을 쌓고 관리했다고 한다. 실제 영조 원년(1725) 경덕왕릉을 증축하고 그때부터 지내온 왕릉 제사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현재 조문국사적지에는 38기의 고분을 정비해 공원처럼 꾸며 놓았다. 능선은 야트막하고 봉분을 따라 연결된 산책로는 물결처럼 부드럽다. 소풍하듯 가볍게 둘러볼 수 있다.군데군데 소나무 몇 그루를 남겨 두었지만 무덤이라는 특성상 그늘이 부족하다. 요즘 같은 날에는 양산이 필수다. 해 질 무렵 방문하면 2,000년 잠에서 깨어난 ‘잊힌 왕국’의 미스터리가 더 신비스럽게 다가온다.
일제강점기에 세운 문익점면작기념비. 의성현감으로 부임한 문익점의 손자가 일대에서 면화 재배를 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의성 조문국사적지 인근의 작약밭. 뿌리부터 꽃잎까지 약재로 쓰는 작물이라 요즘 의성의 특산품이다.주차장 부근에 ‘문익점면작기념비’가 있다. 1935년 일제강점기에 목화 재배를 독려하기 위해 세웠다.문익점이 장인과 함께 목화를 시험 재배한 곳은 고향인 산청인데 이곳에 비석이 선 이유는 뭘까. 조선 태종 때 그의 손자 문승로가 의성현감으로 부임해 일대에서 면화를 재배했다니 전혀 뜬금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의성은 목화 대신 작약의 주산지다. 끝물이지만 조문국사적지와 들판 곳곳에서 소담스러운 작약을 볼 수 있다. 고분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인류의 역사를 무색하게 하는 공룡 유적이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산지’다. 약 1억1,0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 중기에 형성된 경상분지의 하천과 범람원 퇴적층에 300개 이상의 공룡 발자국이 선명하다. 높이 30m 경사진 암반에 작게는 지름 10cm, 큰 것은 90cm나 되는 발자국이 무더기로 모여 있다. 4종류 12마리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밀집도에서 국내 최고 수준이다. 발의 크기, 보폭, 걷는 방향을 알 수 있어서 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의성 조문국사적지 인근 도로변의 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 도로공사를 하다가 발견됐다.
의성 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에 커다란 공룡발자국이 선명하다.공룡발자국은 1998년 지방도로 확장 공사 중 산허리를 깎아내면서 발견됐다. 때문에 관람 환경은 좋지 않다. 길가에 임시로 차를 댈 공간이 있을 뿐 공식 주차장이 없다. 차량 통행이 적어 다행이지만 무단으로 도로를 건너야 할 형편이어서 주의가 필요하다.30도 날씨에도 등골 서늘, 빙계계곡탑리에서 약 10㎞ 떨어진 빙계계곡 역시 오래된 자연의 신비다. 얼음구멍(氷穴)과 바람구멍(風穴)에서 한여름에도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찬바람이 술술 새나온다. 경사면에 쌓인 암괴 틈에 저장된 찬 공기가 여름철에 외부의 더운 공기와 만나 물방울과 얼음을 만드는 자연현상이라 설명한다. 과학적으로 깊이 파고들수록 이해하기 더 어렵다.최소 6,500만 년 전에 만들어진 지형이라니 인간의 역사로 가늠할 수 없는 세월이다.
의성 빙계계곡 전경. 사진 오른쪽 아래 빙계서원에서부터 시작된다.
의성 빙계계곡 입구 물레방아에 시원하게 물이 쏟아지고 있다.
의성 빙계계곡 주변 바위 틈마다 찬바람이 감지된다.입구의 빙계서원부터 상류의 풍혈까지는 약 500m, 계곡과 나란한 길을 걷기만 해도 도로변 바위틈에서 새나오는 찬바람이 감지된다. 한여름이면 자리싸움이 치열할 듯하다. 가장 차가운 빙혈은 마을 뒤편에 위치한다. 훼손을 막기 위해 콘크리트 구조물을 설치해 내부는 눈으로만 볼 수 있다. 지난달 27일, 낮 기온은 30도에 육박하는데 안에 매달아 놓은 온도계는 1.9~2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냉장고보다 차가운 곳이다. 신비로운 현상에 그럴듯한 이야기가 보태지는 건 기본이다. 춘원 이광수는 ‘원효대사’에서 무열왕의 둘째 딸 요석공주가 유월 염천에 젖먹이 아들 설총을 데리고 지아비인 원효대사를 만나기 위해 빙혈을 찾은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공주는 좁은 굴 속을 더듬더듬 기어 들어갔다. 이리 꼬불 저리 꼬불 몇 굽이를 지나 얼마나 들어갔는지 모른다. 점점 추워졌다. 공주는 전신이 꽁꽁 어는 듯하였다.”
의성 빙계계곡의 빙혈 내부. 들어갈 수 없고 볼 수만 있다.
빙계계곡 빙혈 내부 온도계가 1.9도를 가리키고 있다.
의성 빙계계곡의 풍혈. 표시된 곳뿐만 아니라 일대 바위 틈이 모두 바람 구멍이다.
빙혈 앞 빙계사지 오층석탑. 빙혈은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이야기를 품고 있다.빙혈 앞에는 탑리의 것과 꼭 닮은 빙계사지 오층석탑이 매끈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문화재적 가치는 한 수 아래인 보물로 지정돼 있지만, 주변 산세와의 조화는 오히려 뛰어나다. 빙계계곡 가는 길의 산운마을은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영천 이씨 집성촌으로, 한옥과 돌담으로 어우러진 정취가 고즈넉하다. 마을 중앙에 운곡당이 자리 잡고 있다. 영월부사를 지낸 이희발의 집이라고 한다.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한 가벽(내외담)과 향나무, 정갈한 마당과 마루에 양반가의 기품이 배어 있다. 뒷마당 담장 너머로는 삿갓처럼 봉긋한 금성산이 우람하면서도 아늑하다.이웃한 소우당은19세기 초에 지었는데,높은 담장으로 둘러진 별당 정원이 자랑이다. 상수리 산수유 대나무 소나무 단풍나무 등이 시원하게 그늘을 드리운다. 특히 아름드리로 자란 측백나무 두 그루는 흔치 않은 조경수다. 석축으로 구불구불하게 쌓은 연못에 후원의 그윽한 정취가 담긴다.
금성산(왼쪽)과 비봉산을 병풍 삼아 자리 잡은 영천 이씨 집성촌이다.
의성 산운마을의 대표 양반가인 운곡당.
수목이 가득한 산운마을 소우당 후원.
폐교를 개조한 산운생태공원 어린이 동상 위에 참새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뒤편의 금성산이 보인다.
의성 산운생태공원에 설치된 공룡 모형. 잠시 공룡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진다.마을 앞 산운생태공원 곳곳에는 공룡 모형을 설치해 놓았다. 이질적일 법도 한데 마을을 감싸고 있는 금성산과 비봉산 능선과 묘하게 조화롭다. 금성산은 약 7,0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분화한 화산이다. 역시 미스터리 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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