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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망용리  0 Comments  2 Views  25-10-12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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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수요시위 참석하며 첫 인연 진중한 성격의 할머니, 배움도 성실 미술치료 등 여러 수업에서 늘 1등 쉼터 활동가에게도 언제나 존댓말
시간 흐르며 ‘평화·인권운동가’로 피해자에게 “당당해지라” 주문 할머니와 보낸 시간은 ‘지극한 사랑’
2005년 6월 말 우리나라에서 열린 세계여성학 대회가 끝나고 인천에서 큰 굿판이 열렸다. 일제 강점기에 원통하게 끌려갔다 끝내 돌아오지 못한 한국토지주택공사 경남지역본부 어린 처녀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해원굿 현장이었다. 딸인 듯 보이는 곱고 참한 여성이 할머니 몇 분을 몹시도 알뜰히 챙기며 들어왔고 몇몇 사람이 반갑게 인사를 올렸다. 알고 보니 교회 다니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굿판에 참석하신 거였다. 별다른 말씀은 없었고 그렇게 먼발치의 일별이 있었다.
그리고 참석하리라 마음으로 학자금대출 생활비 이자 만 되뇌던 수요집회에 한 발 끼워 넣기 시작했다. 참석 첫 날, 아직은 정정하신 할머님들 여러분을 직접 뵈며 나는 염치도 버리고 몹시 울었다. 그간 막연히 자료로만 알고 있었던, 할머니들이 당한 학대에 분노한 일반적 감정이 아니었다. 평소 거의 쓰지 않던 단어 ‘억울함’을 가슴 깊이 치올리면서 이해했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할머님들과 연을 학자금대출 가족관계증명서 이었다.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방학이면 서울 서대문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를 찾아 만두를 함께 빚으며 할머니들 사정을 듣게 했다. 여러 할머니 가운데 가장 점잖은 성정의 길원옥(1928~2025·2·16) 할머니가 끔찍한 강제 연행 이후 시간들을 이야기하는 것을 젊은 학생들이 숨죽인 울음으로 듣는 것을 곁눈으로 흘끗거리며 한편으로는 그들의 정의 취업면접 감과 당연한 분노에 대견해 했다.
여러 어른이 모여 지내는 공간에, 특히 나이 든 여성들의 기질 차이는 번잡할 수 있겠으나 딸인 듯 여겼던 손 실장님(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시절 고 손영미 선생의 직함은 실장이었다)의 ‘헌신’이라는 단어가 훼손되지 않는 리더십과 안배 덕분에 수굿하고 무던한 쉼터, 따뜻한 ‘우리집’이 될 수 있었다. 그 무 보험설계사 렵 손 실장님은 길원옥 할머니의 생애사를 중심으로 석사 논문을 쓰고 있었고 남의 논문 읽는 게 취미인 나는 풀 방구리 쥐 드나들듯 쉼터에 가서 실장님과 함께 머리를 맞댔다. 덕분에 말수 적으셨던 원옥 할머니의 기막힌 사연을 좀 더 깊게 들을 수 있었다.
대부분 피해자가 그렇듯 열세 살, 제2차 성징도 나타나지 않은 어린 여자아이에게 가한 그 폭력을 어찌 몇 마디 단어로 정리해 날려버릴 것인가? 우리의 언어가 얼마나 손쉽게 남용되는지. 여러 할머니 가운데 가장 진중한 성격의 소유자인 길원옥 할머니는 배움에서도 당신의 성실함을 보여주셨다. 미술 치료, 원예치료 등등 많은 자원 활동가들의 수업에도 언제나 1등이셨다.
“기러기 할매 바쁘다.” 조신하고 유난히 불심이 깊어 변변찮은 단주(염주 종류) 선물에도 몹시 기뻐하셨던 부산 태생의 이막달 할매는 길원옥 할머니를 ‘기러기 할매’로 칭했다.
“내일은 데모 가야지.” 그건 수요집회를 의미했다. 다들 손 실장님 인도 아래 열심히 나오셨다. 집회가 열린 일본 대사관 앞 ‘평화로’는 늘 사람들로 가득했고 몇몇 할머니들의 공적인 의식이 키를 높여 갔다.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의 키가 유난히 높았다. 친근한 할머니에서 점점 우리의 스승이 되어가셨다. 당신들의 과거를 아파하며 드러날까 우려하던 피해자에서 ‘당당해지라, 더 이상 전쟁이나 억압에서 고통받는 여성은 없어야 한다!’며 평화와 인권운동가로. 기독교 신도였던 분의 ‘거듭남’이 저런 모습일까? 저 모습은 꼭 배워야 했다.
당신의 욕구를 드러내지 않으신 원옥 할머니는 자식, 손주들의 안위만 염려하셨다. 일요일이면 아들 교회 예배참석을 위해 서대문에서 인천행을 거르지 않으셨고 손녀딸의 학비와 해외연수 비용을 걱정하시며 당신을 위해서는 사탕 한 알도 절제하셨다.
가난했던 정대협 시절, 도움 주는 이도 휴일도 없이 손 실장님은 아침마다 할머니들의 진지를 두 솥씩 짓곤 했다. 당뇨가 심한 원옥 할머니의 잡곡밥과 그것 마다하시는 다른 할머니들의 흰밥을 위해서였다.
“우리집 할매들은 멀리서 봐도 훠언하다…” 우리에게 인사도 없이 먼저 세상 버린 손영미 실장은 잘 자란 자식 보듯 흐뭇한 얼굴로 자신이 지극정성 모시는 다른 곳의 어른들과 비교하며 입을 삐쭉이며 야젓잖은 어투로 말하곤 했다. 그게 참 좋았다. 하나도 얄밉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나 고마웠다. 그런 실장님에게 한 번도 하대를 한 적이 없는 분이 원옥 할머니셨다. 늘 존댓말을 하셨다.
“내가 어려서부터 동네에서 까불까불 노래를 부르고 다녔어.” 여간해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지 않고 절제해왔던 길원옥 할머니는 결국 어려서부터의 꿈이던 가수가 되었고, 지금 나는 그 음반 가운데 백난아의 ‘찔레꽃’을 원본보다 더더욱 애절하고 간드러지게 부르는 길원옥 버전의 ‘…남쪽 나아라 내 고오오향…’을 울면서 듣고 있다.
우리 만났던 지난 시간, 그건 지극한 사랑이었다.
“기억 잊어버리는 약을 먹었나? 왜 기억이 안 나지…?”(영화 ‘김복동’ 마지막 장면의 길원옥 할머니 대사)
원옥 할머니, 복동 할매랑 손 실장 만나셨는지요? 당분간 편히 쉬고 계세요.
돼지엄마 올림.
임계재/수요시위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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