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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격변의 시대, 세상은 곳곳에서 뒤바뀌고 있습니다. 대중문화에서 그 역전의 순간을 포착해 사회·문화적 변화를 짚어 봅니다.




그룹 올데이프로젝트 멤버 애니. 정유경 신세계 회장의 장녀다. 유튜브 캡처


#역전1
"사모님 들어오십니다"
무선 마이크로 한 남성이 이렇게 알리자 집 거실에 있던 여성은 "네~"라고 답했다. 경비원과 가사 도우미의 대화다. 릴게임바다이야기사이트 이 대화는 지난 6월 데뷔한 그룹 올데이프로젝트 멤버 애니(문서윤)의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고스란히 노출됐다. 영상은 순식간에 퍼졌고, K팝 팬들은 ''찐 재벌' 일상 간접 체험 중'이란 반응을 보이며 신기해했다.
애니는 이명희 신세계 총괄회장 외손녀이자 정유경 신세계 회장의 큰딸이다. 열여섯이던 2016년 오디션을 보고 더블랙레 바다신2게임 이블의 연습생으로 들어갔다. 재벌가 자제가 기획사에 연습생으로 들어가 K팝 아이돌그룹으로 데뷔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의 아들인 로렌(이승주) 등 '금수저'들의 K팝 연습생 도전도 최근 잇따르는 추세다. 1996년 그룹 H.O.T. 데뷔를 시작으로 지난 28년 동안 변함없던 K팝의 '개천 용 서사'는 '재벌돌'의 등장으로 확 뒤집혔다. 릴게임바다신2 이젠 "연습생 시절 식비가 부족해 집 주변 옥수수밭에서 옥수수를 서리"(그룹 god)해 끼니를 때우거나 "7명의 남자가 한집에 살아 하나밖에 없는 화장실이 모자라 급할 때 집 밖 공동화장실로 뛰어"(그룹 방탄소년단)가지 않는다.



가수 로렌.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의 아들이다. 모바일바다이야기하는법 더블랙레이블에서 연습생 생활을 했다. 로렌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역전2
'대형기획사 관리생/초4 ㄱ○○'.
ㅈ씨는 딸 사진과 함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프로필에 이런 문구를 써 제일 위에 걸어뒀다. K팝 기획사는 길거리 캐스팅 등을 통해 뽑은 관리생을 3 바다이야기꽁머니 ~6개월 동안 노래와 춤 등을 가르친 뒤 평가를 통해 연습생으로 남길지를 결정한다. 자식이 기획사 연습생으로 가기 전 단계인 관리생이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모들에겐 자랑거리가 되는 시대다. 자녀가 연습생 준비를 하면 '문제아'로 낙인찍힐까 쉬쉬하던, 20여 년 전 부모들에겐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K팝 중소 기획사 관계자는 "(중학생 이하) 키즈 오디션을 하면 부모님들이 아이를 데리고 와 몇 시간씩 기다린다"며 "자식들 운동 투자에 부모들이 적극적인 것처럼 요즘 들어오는 연습생들을 보면 중산층 이상이 예전보단 많아진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댄스 듀오 클론 출신 강원래가 쓴 박사 학위 논문 'K팝 아이돌 연습생 양성 체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2025년) 속 사례 연구를 보면, 요즘 청소년들은 K팝 연습생이 되기 위해 통상적으로 노래와 춤을 가르치는 학원에 다닌다. "학원형 기획사(연예 학원)에 들어가면 매달 학원비도 내야 하고 따로 개인 지도를 받기도 해 비용이 무척 많이 들어" 부모의 지원이 중요해졌다.



그룹 올데이프로젝트 남성 세 멤버의 숙소. 큼지막한 거실에 세 멤버는 각방을 쓰고 있다. MBC 영상 캡처





올해 데뷔한 K팝 혼성 댄스 그룹 올데이프로젝트. 더블랙레이블 제공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7명은 한집에 살며 하나의 화장실을 썼다. 함께 사는 사람이 많다 보니 거실에 물품이 많다. 멤버들이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 빅히트 영상 캡처





그룹 방탄소년단이 2018년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빌보드 뮤직어워즈에서 '페이크 러브'를 부르고 있다. AP 연합뉴스





그룹 god가 연습생 시절 살았던 지하 숙소 모습. 냉장고가 없어 음식을 창문 밖에 내놓고 먹었다고 한다. SBS 영상 캡처





그룹 god. 아이오케이컴퍼니 제공


①'금수저'들의 진출이 잇따르면서 연습생들의 출발선이 달라졌다. ②K팝 연습생 시스템이 사실상 입시처럼 조기 경쟁이 심해지며 서열화하고 있다. K팝이 점점 계급화되면서 벌어지는 격변이다.
과거 K팝이 노력과 실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의 땅'으로 여겨졌다면 이젠 아니다. 명문대 입시처럼 조기 교육과 배경이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면서 업계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세계에서 '비주류의 승리'로 주목받는 K팝의 두 얼굴이다.



댄스 듀오 클론 출신 강원래(오른쪽)가 쓴 박사 논문 표지. K팝 아이돌 연습생 양성 현실과 문제점 개선 방안 등을 다뤘다. 연합뉴스



"인플루언서 하면 되지" 엔터 교육에 투자하는 이유

과열된 경쟁으로 계급화가 가속화되는 건 K팝 연습생 시스템으로의 진입을 '문화 자본'을 쌓는 투자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 전환과 맞닿아 있다.
요즘 청소년과 학부모들에 K팝 연습생 도전은 자기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으로 여겨진다. 단순히 K팝 아이돌그룹 데뷔만을 위해 꿈만 좇는 게 아니다. K팝 아이돌그룹으로 데뷔하지 못해도 관리생, 연습생 과정을 통해 얻은 경험과 네트워크 그리고 인지도를 바탕으로 유튜버 등 인플루언서로 방향을 틀면 된다고 생각한다.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주말에 노래와 춤을 가르치는 K팝 학원전문반 강의 수업료는 4주에 72만 원('SM 유니버스' 기준). 적지 않은 비용인 데다 이렇게 레슨을 받고도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 어려워 연습생이 된다는 보장도 없지만, 부모들이 자식들 엔터테인먼트 교육에 투자하는 이유다. "공부해서 직장인 된 걸 제일 후회한다. 기획사 연습생 준비하는 게 결국 자기 브랜드 만드는 과정이고, 아이에게 잘 안 돼도 좋으니 인플루언서 할 생각하고 그쪽(K팝 기획사) 시스템 다 흡수하고 나오라고 할 거다"(초5 아들을 둔 40대 엄마 이씨)라는 게 부모가 된 밀레니얼 세대의 생각이다.
김헌식 중원대 사회문화대 특임교수는 "20년을 회사 부속품으로 살다 결국 쫓겨나는 '서울 자가에 대기업을 다닌' 김 부장이 되고 싶지 않고, 자식도 그 길을 가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라며 "자기만족이 중요하고 K팝 1세대 아이돌의 득세를 지켜본 밀레니얼 세대들이 부모가 돼 생긴 인식 변화"라고 진단했다. 이렇게 문화 자본을 얻으려는 사회적 열망이 커지면서 K팝 연습생 진입도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중산층 이상으로 재편되는 경향이 보인다. 이동준 성균관대 컬처앤테크놀로지융합전공 초빙교수는 "K팝 연습생 경로가 '고비용 투자-사교육-네트워크(기획사)-진입'이라는 사교육 입시 경로와 유사해지고 있다"고 봤다.



최태원(오른쪽) SK그룹 회장과 DJ로 활동 중인 레이든. 레이든은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외손자다. 최 회장 SNS 캡처



'헝그리'? '구김살 없는 쿨함'... 계급 재생산

험난한 K팝 연습생 시스템으로 '금수저' 청소년들의 잇단 진입은 타인의 관심을 사로잡는 매력이 곧 자본이 되는 대중문화 시장에서의 소비 방식 변화와 맞물려 있다. 매력 자본이 '개천 용의 절박함'에서 '구김살 없는 쿨함'으로 바뀌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모든 게 여유롭고 쿨한 애니를 보며 대리만족"(ㅇ씨, 22·중앙대)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런 흐름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통하지 않고 이제 그런 희망과 믿음도 고갈된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K팝 팬덤을 비평한 책 '망설이는 사랑'을 낸 안희제 작가는 "K팝 아이돌이 만드는 이미지는 한국 사회에서 사랑받는 데 필요한 자격을 집약하고 있다"며 "K팝 아이돌이 되는 핵심 경로인 연습생 시스템에 '금수저' 청소년들이 진입하는 건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타고난 좋은 배경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매력이 사람들에게 각광받고 있다는 것이고 '사랑받고 자란 티'가 곧 '관심 경제'에서 사랑받을 자격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이 현상을 짚었다.
쿨함은 경제적 여유에서 비롯된다. 실력과 인성 등 개인의 노력으로 얻은 것보다 타고난 것이 압도적인 힘을 지니게 된다는 건 그 산업이 경직됐다는 신호로 읽힌다. 진수현 중앙대 다문화 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는 "가난한 누군가가 피나는 노력으로 성공한 스토리보다 많은 자본을 지닌 사람의 재능이 더 희소한 매력 자본으로 주목받는 건 결국 K팝 시장이 사회적 계급을 재생산하는 플랫폼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징조"라며 "재벌가가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왜 경영자가 아닌 플레이어(연예인)로 뛰어들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냈다.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외손자인 한석현은 레이든이란 예명으로 SM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 겸 DJ로 활동하고 있다.



내년 남성 아이돌그룹 데뷔를 앞두고 있는 하민기. '신전떡볶이' 창업주의 손자다. '원마이크' 유튜브 영상 캡처



약해지는 '공정 경쟁' 신화

K팝 기획사들은 희소성 등의 이유로 '금수저' 연습생들에 호의적이다. 모던베리코리아는 내년 신인 남성 아이돌그룹 데뷔에 앞서 멤버 하민기가 연 매출 1,000억 원이 넘는 식품 중소기업('신전떡볶이') 창업주의 손자라는 사실을 먼저 알렸다. 멤버의 배경으로 그룹 홍보를 한 것이다. 10년 넘게 K팝 아이돌그룹 기획을 하는 기획사 관계자는 "요즘엔 예전과 달리 '악으로 깡으로'보다 학교폭력 등 논란 예방 측면 등에서 '곱게 자라 사고 안 치고 구김살 없는' 요소를 눈여겨본다"고 귀띔했다.



그룹 걸스데이는 2014년 '섬싱'으로 인기를 누렸다. 당시 SM, JYP, YG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기획사 소속도 아니었다. 걸스데이 SNS 캡처





그룹 에이핑크. 2016년 활동 시절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룹 하이포. 하이포 SNS 캡처


갈수록 뚜렷해지는 산업의 양극화는 K팝의 계급화를 부추겼다. 멜론·벅스·스포티파이 등 국내·외 음원 플랫폼 9곳의 음원 소비량을 집계하는 써클차트를 확인해 보니, 지난해 가장 많이 재생된 노래 톱10 중 K팝 아이돌그룹 노래는 에스파의 '슈퍼노바' 등 7곡으로 모두 상장된 유명 기획사에서 만들어졌다. 중·소 기획사 소속 아이돌그룹 노래는 한 곡도 없었다. 2014년 같은 부문 톱 10에 에이핑크의 '미스터 추'(7위·플레이엠 엔터테인먼트), 하이포의 '봄 사랑 벚꽃 말고'(8위·NAP엔터테인먼트), 걸스데이의 '섬싱'(9위·드림티 엔터테인먼트) 등 중·소 기획사 소속 아이돌그룹 노래가 세 곡이나 포함된 것과 비교하면 대조적이다. 10년 사이 히트곡을 내는 중·소 기획사가 싹 사라진 셈이다. 자본과 시스템의 영향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다. K팝 흥행을 하이브·SM·JYP·YG 등 대형기획사가 사실상 독점하면서 연습생부터 '어느 기획사에 속했는가'가 출발선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
이렇게 계급화가 가속화되면 '공정 경쟁'의 신화는 약해진다. 출발선이 달라지면 '흙수저' 연습생들의 불안감은 상대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 불안의 차이는 또 다른 격차를 낳는다. 김성윤 동아대 융합지식과사회연구소 전임연구원은 "연습생 생활이 중단돼 데뷔가 무산될 때 별다른 안전망 없이 곤궁함을 수용해야 하는 청소년과 경제적 안전망을 토대로 모험이 장려되는 집안에서 '실패해도 괜찮아'란 말을 듣고 연습생 트랙에 뛰어든 청소년 사이 공정한 경쟁이 작동할 거라 기대하긴 어렵다"고 봤다.



그룹 H.O.T의 데뷔곡은 '전사의 후예'였다. 학교폭력을 비판하는 곡이었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저항과 성장 서사'는... K팝 미덕의 실종

K팝의 계급화는 음악의 결도 바꾸고 있다. 예전엔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에 저항하거나 성장을 강조했다면, 요즘엔 '태생적 우월함'을 기반으로 한 가사가 속속 나오고 있다.
양상은 이렇다. 그룹 H.O.T.는 데뷔곡 '전사의 후예'(1998)에서 "그들은 날 짓밟았어 하나 남은 꿈도 빼앗아 갔어"라고 노래하며 학교 폭력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고, 그룹 방탄소년단은 데뷔곡 '노 모어 드림'(2013)에서 "장래희망 넘버원.. 공무원?"이라며 "억압만 받던 인생 네 삶의 주어가 되어 봐"라고 외치며 기성세대의 말에 주눅 들지 말고 네 꿈을 찾으라고 했다.
이런 흐름과 달리 계급화에서 살아남은 아이돌그룹은 '나의 특별함'을 부각한다. 올데이프로젝트는 데뷔곡 '페이머스'에서 "모든 시선들은 날 따라와, 벗 위 에인트 이븐 페이머스(But we ain't even famous·'유명하진 않지만'이란 뜻) "같은 공기지만 우린 너무 다른 위치"라고 랩을 한다. 공동체성과 성장 서사가 약해지면 대중과의 거리는 오히려 멀어질 수 있다. 계급화한 K팝의 약점이다. 김성윤 전임연구원은 "계급화된 K팝엔 그간 K팝의 중요한 미덕으로 꼽혔던 성장을 기반으로 한 서사적 스토리텔링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며 "결국 얼마나 바이브(사람이 뿜어 내는 분위기)가 매력적인지와 음악이 세련됐는지 등 형식미에 집중하게 된다"고 평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