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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8일 대체 무엇이 재미있는 산행이지?
어젯밤 다 같이 모여서 잠을 잔 뒤 함께 공항으로 출발했다. 공항에 형들이 우리를 배웅하러 왔다. 나는 등산복 차림에 큰 배낭을 메고 있었는데, 상언이 형은 청바지에 '후리스'를 입고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같이 꼬질꼬질한 배낭을 메고 있어야 할 거 같았는데, 형은 문명인처럼 새마을금고적금금리은행 입고 있었다. 함께 가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형의 선택이 이해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어쨌든 형들의 배웅을 받으며 비행기에 올랐다. 잠시 조는 사이 우리를 태운 비행기는 순식간에 바다를 건너 일본에 도착했다. 내 인생 첫 일본 여행을 원정으로 오게 되다니. 낯선 언어로 가득한 주변을 둘러볼 시간도 없이 이동을 시작했다.
예전부터 느낀 거 창업자금대출 지만 배낭을 메고 이동하는 게 가장 큰 일이다. 배낭은 크고 사람은 많고 길은 낯설었다. 이동을 위해 거의 하루를 다 썼다. 버스와 기차에서 병든 닭처럼 계속 꾸벅꾸벅 졸면서 이동했다. 차림새 때문인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쳐다봤다. '베이스 가방(커다란 짐 가방)'만 해도 엄청 눈에 띄는데 어택백, 피켈, 매트 따위가 주렁주렁 달려 있으니 시선이 잔뜩 느 증명발급신청 껴졌다. 이런 차림이 이목을 끄는 건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똑같다. 얼마 후 그 시선들에 익숙해져서 사람들이 쳐다보거나 말거나 그냥 바닥에 앉아 쉬었다. 역시 편한 게 최고였다.
저녁을 먹기 위해 다 함께 화장실 바닥에 둘러앉았다. 한쪽에서는 마실 물을 만들기 위해 눈을 기초생활수급자신용불량 끓이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밥을 짓고 있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두고 식량을 구입하러 가는 길에 갑자기 형들이 뛰기 시작했다. 속으로 '하하하' 웃으면서 같이 뛰었다. 열정을 다하고 싶지 않아서 크록스를 질질 끌며 흐물흐물 따라갔다. 식량 구입까지 마친 뒤 숙소 옥상에서 짐 패킹을 했다.
여자 직장인 쇼핑몰 짐 패킹을 끝낸 뒤엔 마트에서 사온 음식들로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공항에서 아침을 먹은 뒤로 처음 하는 식사였다. 식사를 끝내고 나서는 조금이라도 더 쉬기 위해 곧장 침대로 향했다. 샤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포기했다. 어차피 내일부터 못 씻는데 오늘 하루 좀 안 씻는다고 더 더러워지진 않으니까. 그냥 침대에 드러누웠다. 곧 시작이라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정신이 계속 멍했다. 두 발은 아직 도시에 있는데 정신은 며칠 전부터 산에 있었다. 머리가 차갑게 가라앉은 기분이었다. 문득 후회가 들었다. 좀 더 훈련하지 못했던 것, 한계의 한계까지 스스로를 밀어붙이지 못했던 것, 자신을 더욱 독하게 내몰지 못했던 것 등. 이런 후회는 습관이 된 모양이었다. 나름대로 운동하고 훈련해도 늘 모자라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속도가 곧 팀 전체의 속도가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운동해 왔다. 나는 체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고 팀으로 운행할 때는 뒤처지는 사람에게 맞추게 되니까. 잘하고 싶은 욕심은 넘쳐나는데 훈련이나 성과는 그 욕심을 따라가지 못했다. 실력 부진은 후회와 자책으로 이어졌다. 습관적으로 자기 채찍질을 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스스로를 한계까지 몰아붙이지 못하면 나 자신이 약해지는것 같았다. 그다지 힘들지 않은, 편하기만 한 산행은 나약함의 증거 같았다. 그게 싫었다. 며칠전부터 기분이 안 좋았던 것은 아마 그 탓이었을 것이다.
운행 도중 하산하기로 결정한 후, 급하게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정상까지 약 1,000m를 남겨둔 시점이다.
한참 원정 준비를 하고 있었을 때, 무의식적으로 '나는 정상에 갈 수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어쨌든 무조건 간다는 생각으로 했어야 했는데. 형이 나에게 "너는 정상에 갈 수 있을 거 같아?"라고 물었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스스로 나약하게 생각했던 것이 어이 없었다. 짧은 순간이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에 화가 났다. 그래서는 안 된다.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무조건 정상에 가야겠다고. 이왕 하는 거 즐겁게 하라고 했지만 여전히 아리송하다. 그다지 힘을 들이지 않고 느긋하고 편하게 산행하는 것이 즐거운 걸까? 그럼 힘들고 고된 산행에서는 즐거움을 느낄 수 없는 걸까? 대체 무엇이 재미있는 산행이지? 그 의문들은 지금도 잘 풀리지 않는다. 그러나 반복되는 자기 채찍질에도 분명 즐거움은 있었다. 산을 오르고 내려오는 모든 과정을 좋아한다. 후회와 자책, 자기 채찍질마저도 결국엔 산의 일부다. 나는 그런 산이 재밌었다. 화를 억누르며 썩은 표정으로 산행하기 일쑤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산에 가는 것이 참 즐겁다. 언제나 나는 내 나름대로의, 내 방식대로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어쩌면 그걸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이번에도 늘 그래왔던 것처럼 괴롭고 즐겁게 다녀오고 싶었다.
잠시 앉아서 행동식을 먹은 뒤, 다시 출발하기 위해 가방을 잠그고 있다.
2월 19일 얼마나 고생하게 될지 기대됐다
전날 밤 패킹해 둔 배낭을 메고 출발했다. 산길로 들어서기 전 지루한 아스팔트길과 평지를 걸었다. 등이 무거웠다. 평지를 걷고 있는 데도 어깨가 뻐근했다. 하지만 익숙했다. 배낭이 옆으로 기울어질 때마다 내 몸도 같이 쓰러졌다. 가벼운 체중은 바위 탈 때는 좋지만 무거운 배낭을 들 때는 별로 쓸모가 없다. 추운 겨울에는 더더욱 쓸모가 없다. 예전에는 그게 너무 억울해서 하루에 네다섯 끼를 먹었다. 25kg만 들어도 내 몸무게의 절반 이상. 그때는 왜 그렇게 억울하고 짜증이 났을까? 내 체중이 가볍든 무겁든, 들어야 할 배낭의 무게는 달라지지 않는데 그땐 그걸 잘 몰랐다. 그냥 체구가 조금만 더 컸으면 하중 산행이 덜 힘들지 않았을까,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거 같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내 인생 최대 몸무게를 갱신했다. 고작 숫자 몇 개 차이인데도 예전보다는 하중이 덜 힘들다. 내 몸이 하중에 익숙해진 걸 수도 있겠지만.
지루한 아스팔트길을 지나 산길로 들어섰다. 아스팔트길은 걸어도 걸어도 끝나지 않을 듯하더니 산길로 들어서자 목적지까지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꽤 순조롭게 한 합목씩 넘으며 올라갔다. 각자 속도에 맞추어 걷다 보니 나만 애매하게 떨어졌다. 앞서 가는 지호 형과 교정 형을 따라 잡기에는 부족했고, 뒷 인원이랑 맞추기에는 페이스가 느려졌다. 결국 선발대와 후발대의 중간 지점에서 걸었다. 꼭 나 혼자 산행 중인 것 같았다. 전날까지만 해도 뭔가 우울했는데 기분이 좋아졌다. 혼자서 산가를 중얼중얼 불렀다. 그렇게 걷다 보니 금세 5합목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텐트를 쳤다.
입산하기 전, 후지산이 보이는 숙소 앞에서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다. 다들 무거워 보이는 배낭을 메고 있다.
저녁 시간 '니모(텐트 브랜드 이름)' 텐트에 모여서 다같이 저녁을 먹었다. 암만 잘 끼어 자도 4명 정도가 한계인 이 텐트에 10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불편하지만 뭔가 웃기고 재밌었다. 모여 있으니까 춥지도 않았다. 후지산이 정말 춥다길래 최선을 다해 껴입고 왔다. 브린제 위에 보온내의, 기능성 티셔츠, 경량 패딩, 보온재킷 두 벌, 우모 패딩까지 껴 입고 잤다. 설악산 때처럼 감기 걸릴까 봐 잘 때도 발라클라바에 비니를 썼다. 덕분에 안 추웠다. 이만하면 안락하다고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눈앞에 보이는 텐트의 천장이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또 얼마나 고생을 하게 될지 기대됐다.
2월 20일 정상 가고 싶었는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비몽사몽 아침 밥을 먹고 크램폰을 찼다. 드디어 진짜 시작이란 느낌이었다. 희수 장비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린 건 각자 개인정비를 마칠 때쯤이었다. 크램폰에 이상이 있는 모양이었다. 가방끈도 이상하더니 크램폰까지? 안타깝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냥 모른 척했다. 문득, '장비를 챙길 때 내가 희수 장비까지 제대로 확인했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실수한 것 같고, 꼼꼼하지 못했던 것 같아서 스트레스 받았다. 크램폰이 없어서 정상 등정을 시도조차 못 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그려졌다. '체력 부족 혹은 컨디션 난조로 인해 정상을 못 가게 될 누군가의 크램폰을 빌려야 하나'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정상에서부터 시작된 긴 하산길. 다들 잠시 앉아서 숨을 돌리고 있다. 베이스캠프 도착까지 30분 남짓한 거리이다.
나는 내가 실수했을 때보다 남이 실수했을 때(특히 희수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본인의 실수는 반성하고 해결한 뒤 나중에 반복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근데 동기가 실수하면 같이 해결을 해줘야 할지, 그냥 냅둬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화를 낸다면 얼마나 내야 할지, 형에게 혼났으니 위로를 해주어야 할지, 같이 반성해야 할지 헷갈린다. 하지만 곧 그 생각을 집어 넣었다. 희수도 거의 반 년 동안 산악부 생활을 했고 춘하추동을 모두 다녀왔는데. 이 해프닝에 대해서 그만 생각하고 싶었다. 다행히 크램폰은 어찌저찌 해결돼 운행을 나갈 수 있었다.
초반에는 수월한가 싶더니 길이 점점 더 이상해졌다. 눈에 발이 푹푹 빠지고 나무들이 방해했다. 나는 지호 형 뒤에서 형이 낸 발자국만 쏙쏙 골라 밟으며 올라갔지만.
형의 뒷모습을 정신없이 좇아가고 있다. 저 멀리 까마득한 정상이 보인다.
저 멀리 건물 비슷한 게 보이긴 한데, 걸어도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마치 신기루를 좇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다리에 펌핑이 왔다. 초반에 힘을 너무 뺀 탓인지 속도가 나지 않았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몇 명이 너무 멀리 뒤처져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시간이 많이 부족한데, 전체적으로 속도가 붙질 않아서 조바심이 났다. 정말 정상에 가고 싶었다. 결국 하산이 결정났을때, 나도 모르게 "정상 가고싶었는데…" 라는 중얼거림이 튀어나왔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하산했다. 하산을 끝내고 베이스캠프로 돌아오니 오후 2시가 넘어 있었다. 시간이 많이 남아 개인정비를 한 뒤 텐트도 정비했다. 제대로 되지 않았던 평탄화 작업도 다시 하고 텐트 내부도 깨끗히 정리했다. 개인장비 정리 중, 희수가 내게 와서 괜찮냐고 물었다. 뜬금없는 물음에 "뭐가?"하고 되물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표정이 어두워졌던 모양이다. 신기하게 희수가 이런 건 잘 알아차린다. "아니야. 나 멀쩡해." 곧바로 표정을 수습했다. 어느 정도 정비를 끝낸 후, 정찰을 간 인원이 돌아올 때까지 텐트에서 저녁식사 준비를 했다. 그러다 실수로 물을 끓이던 코펠을 쏟았다. 으악! 결국 다시 물을 끓이고 저녁식사를 했다. 내일은 예비일이라 그나마 마음이 좀 여유로웠다. 예비일 동안 충분히 컨디션을 회복하고, 꼭 성공하고 싶었다.
2월 21일 피켈이 불쌍했다
전날 밤, 잠이 안 와서 뒤척이던 중 지진이 났다. 갑자기 텐트가 와르르 요란스럽게 흔들리길래 기겁을 했다. 처음엔 다들 별 반응이 없었다. 1분 정도 지나고 나서야 반응이 생겼다. 눈 사태가 일어나서 베이스가 다 쓸려나가는 건 아닌지, 괜한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형들이 다시 자길래 나도 그냥 잠을 잤다.
오늘은 예비일 겸, 제대로 설산 훈련을 해보기로 했다. 40분 정도 올라간 곳에서 다 같이 설산 훈련을 했다. 보행법, 활락정지, 설산에서의 확보법 등을 배웠다. 전날까지만 해도 되는 대로 걸어 갔는데 걷는 법을 배우니 확실히 편해지는 것 같았다. 역시 뭔가를 배우는 건 재밌다. 특히 산에서는 이런 것들 하나하나가 내 목숨과 직결될 수 있기에 더 집중하게 된다. 집중해서 배우니 재미있었다. 배우는 것만으로도, 내가 그 상황에 놓여 있는 듯한 공포스러움이 느껴졌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살기 위해 확보물을 만드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공포스러웠다. 특히 피켈을 눈 속에 묻을 때가 가장 충격적이었다. 대체 어떻게 피켈을 눈 속에 파묻을 생각을 했을까? 뭔가 가학적이었다. 죽은 듯이 눈에 파묻히는 피켈이 불쌍했다. 저 피켈도 살아서 내려가고 싶지 않을까? 저게 과연 사람의 체중을 버틸 수 있을지 의심이 들었는데 막상 당겨보니 생각보다 튼튼했다. 신나서 더 열심히 당겼다. 예전부터 나는 시스템을 배우는 게 느린 편이었다. 외워야 할 게 있으면 그림으로 그려서 외웠다. 헷갈리는 장비와 시스템도 스케치하다 보면 어느 순간 외워졌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날 배운 것들도 스케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작은 텐트 안에 모두 모여 앉아 차를 끓여 마시고 있다.
어느 정도 설산 훈련을 끝내고 나서 시간이 남았기에 베이스를 이동했다. 애써 만든 베이스를 철거하고 이동하려니 섭섭했지만 여기보다 나을 거란 말에 서둘러 텐트를 철거했다. 각자 배낭을 메고 새로운 곳으로 향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도착해 보니 화장실이 있었다. 심지어 꽤 깨끗했다. 화장실 변기에서는 부끄러움 방지용 효과음까지 나왔다. 세면대에 물까지 나왔으면 여기서 3주는 살 수 있을 듯했다. 천장도 있고, 벽도 있고, 평평한 바닥도 있었다. 다만 밤새 불이 꺼지지 않아서 발라클라바로 눈을 가리고 자야 했다. 자기 전에 친구와 잠깐 연락을 했다. 친구도 일본에 와 있었다. 친구는 예쁜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도시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나는 남자 화장실 변기 앞에서 퍼온 눈을 끓이고 있었다. 친구가 내 노숙 생활(?)에 기겁을 하면서도 응원해 줬다.
2월 22일 나를 정상까지 데려가라!
드디어 정상에 갈 수 있는 날이었다. 그리고 정상에 가야만 하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운행을 시작했다. 긴장감 탓인지 일출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은 저번 같은 불상사를 막기 위해 등산로 쪽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초반부터 속도가 여유로웠다. 천천히 운행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덕분에 초중반까지는 체력이 비축되었다. 나무도 풀도 없는 새하얀 벌판을 끊임 없이 걸어 올라갔다. 내 시선은 앞사람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형의 등만 보면서 열심히 따라붙었다. 지난번 그렇게 걷고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았던 부분까지 순식간에 도착했다.
긴 오르막 끝에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동기들과 함께 손 잡고 만세를 불렀다.
운행이 진행될수록 속도가 점점 느려졌지만 그래도 앞쪽에 있으려고 애썼다. 그것은 형들에게 보내는 무언의 신호였다. 아주 만약, 문제가 생겨서 일부만 정상에 가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를 위한 신호 말이다. '아직 나는 더 갈 수 있다. 최소한 이 정도는 따라 붙을 수 있다. 그러니 나를 정상까지 데려가라'고 끊임없이 신호했다. '운행 중간에 나를 하산시키지 말라'는 나름의 시위(?)이기도 했다. 올라가는 내내 머릿속에는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목표는 명확했고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계속 걷는다.' '형 뒤로 따라 붙는다.' '지금까지 얼만큼 걸어 왔는지는 무시한다.' '남은 길에만 집중한다.' 그리고 '목표 지점에 도착한다.' 벽을 탈 때와 비슷한 몰입감이었다. 내 모든 신경이 하나의 목표에만 쏠리는 느낌이었다. 기분 좋은 몰입감이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정지되고, 움직이는 동체는 나뿐이었다.
몰입하는 건 재밌다. 힘들수록 깊게 몰입하게 된다. 아주 깊게 몰두했을 때의 그 감각을 좋아한다. 순수한 몰입에서는 날것의 즐거움이 느껴진다. 힘든 워킹이 너무 재밌다. 암벽 등반만큼 워킹이 재밌다고 느낀 건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순간 순간 내딛는 걸음이 정말 재밌다.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지? 결론적으로 대원들 대부분이 정상에 도착했다. 이곳이 정상이라는 말을 듣자 기분이 좋아져서,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하나 둘 도착하는 일행을 기다렸다. 저 멀리서 올라오는 일행이 보였다. 다들 힘겨워 보였다. 나도 저렇게 힘들게 올라왔겠지, 힘을 보태 주기 위해 '여기가 정상'이라고 크게 소리쳤다.
현빈 형까지 올라온 후 사진을 찍고 빠르게 하산을 시작했다. 한참 내려가던 도중, 저 멀리서 교정 형이 스키를 타고 빠르게 내려갔다. 새하얀 설산과 태양이 합쳐져서 정말 멋진 모습이 연출되었다. 형은 눈 깜짝할 사이 순식간에 내 시야에서 멀어졌다. 나도 저 스키에 탑승해서 하산하고 싶었다.
시야가 답답해서 고글을 벗었다. 맨눈으로 보는 후지산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어쩌면 다신 못 볼 풍경일 수도 있었다. 이런 풍경 속에서 오래 머물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계속 이러고 있으면 조난이었다. 끝내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산은 가치가 있는 거라 생각한다. 힘든 산행에서 순수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건 어쩌면 이때뿐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모든 일정이 끝났다. 이젠 진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화장실에서 기분 좋게 '산토리'를 마셨다. 원래 이런 독주를 안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맛있다. 술을 몇 잔 마시고 침낭 속에 누우니 실감이 났다. 드디어 끝났구나!
정상을 향한 두 번째 출발길에 올랐다. 멀리서 아침 해가 떠오른다.
2월 23일 문명 속에서 눈이 빙글빙글
가벼운 마음으로 아침에 일어나 배낭을 패킹했다. 무거운 건 매한가지인데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제 속세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하산 길이 산길이었으면 무릎이 다 갈려 나갔을 테지만, 다행히 평지였다. 2km 정도의 아스팔트길을 여유롭게 걸었다. 날씨도 좋고 시간도 많고 길도 편해서 너무 평화로웠다. 따뜻한 햇빛을 만끽하며 산책하듯 걸었다. 적당히 걷다 보니 어느새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정류장에는 관광객들이 꽤 많았다. '우와! 속세다.' 산에 있었던 게 꼭 꿈인 것만 같았다. 몰랐던 허기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특히 매점에서 팔고 있는 옥수수가 너무 먹고 싶었다. 근데 아무도 옥수수에 관심이 없었다. 그냥 남은 행동식을 먹으면서 참았다.
숙소에 도착한 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기념품도 샀다. 산에서 씻지도 못하고 노숙하다가 문명으로 돌아오니 눈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신나서 이것저것 다 사들였다. 마지막으로 편의점에 들러 안주를 살 때쯤 급격한 피로감을 느꼈다. 문명 속에서 돌아다니는 것도 엄청난 체력이 필요한 일이라는걸 처음 깨달았다. 어째 하산이 끝나지 않은 기분이었다. 깨끗한 숙소에서(바퀴벌레가 나왔지만) 다 같이 술을 마시며 회포를 풀었다. 이러저러한 사건으로 새벽 5시가 넘어서야 잘 수 있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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