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게임바다이야기베트남 게임장 에도 등장. 투자 사기 사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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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찬랑 0 Comments 3 Views 25-12-03 11:11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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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gamemong.info
지난달 13일 실시된 2026년 대입 수능에서 국어영역의 높은 난이도가 교육계 내부에서 구설에 올랐다. 난이도가 높은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난이도를 높이기 위해 과도하게 현학적인 지문을 일부 채택한 점, 그러면서 지문에 연결된 문제들은 지문 속에 담긴 인간학적 통찰의 100분의 1도 담아내지 못한 채 독해의 기술적 측면만 평가하고 있는 점이 문제였다.
가장 논란이 된 것은 국어영역 17번 문항이다. 이 문항에 연결된 지문은 칸트의 선험적 통각에 대한 통찰을 중심으로(지문에서는 선험적 통각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인격의 시간적 바다이야기비밀코드 지속성을 위해 영혼, 자기의식, 그리고 신체가 각각 기여하는 바를 논하고 있다. 이에 17번 문항은 마인드 트랜스퍼(mind transfer) 혹은 마인드 업로딩(mind uploading)이라는 트랜스휴머니즘 관련 논제를 중심으로 따로 갑과 을, 두 사람의 견해를 소개하며 5개의 예시 가운데 가장 적절한 진술을 고르라고 한다.
이 문제 바다신2게임 를 놓고 이충형 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과학철학 전공 교수는 “전공자지만 지문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만 20분 걸렸다”고 밝히며 해당 문제의 답이 심각한 해석상 오류를 내포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문제로 지목된 요인은 다음과 같다. 지문에 이어 17번 문항에 따로 배정된 갑과 을의 진술은 ‘의식을 스캔하여 프로그램으로 재현한 의식’의 인격 지속성을 판단할 때 ‘ 바다이야기APK 사고와 신체가 함께 기반이 된 인격의 지속성’만을 유념하고 있다. 그런데 답으로 지목된 3번 예시는 ‘칸트 이전 시대 영혼을 기반으로 삼는 인격의 지속성에 대한 이해’를 언급한다. 그러면서 적절한 의미상 연결고리 없이 칸트 이전 시대에 통용되던 종교적 인간이해 및 영혼론을 바탕으로 현대인인 갑과 을의 진술에 담긴 진리값(truth value)을 판정하고 있 야마토게임무료다운받기 다. 이에 이 교수는 17번 문항이 지문에 대한 철학사적, 종교적 이해를 배제한 채 오로지 눈앞에 보이는 텍스트의 피상적인 논리적 흐름만 파악할 것을 요구하는 ‘답 없는’ 문제로 규정한다.
일정한 철학사적 소양을 갖춘 이라면 이 교수의 지적이 타당하다는 것을 금새 알아차릴 것이다. 17번 문항의 갑과 을의 진술은 오늘날 물리주의적 인간이해 야마토게임예시 를 바탕으로 트랜스휴머니즘의 미래를 기대하거나 우려하는 현대인 입장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다. 반면 칸트 이전 시대에 인격의 지속성을 논한 이들(대표적으로는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그리고 데카르트)은 기본적으로 그리스도교 영혼론을 사유의 밑바탕으로 삼고 있다. 그러니 현대인의 입장을 담은 “사고하는 나의 지속”이라는 말을 칸트 이전 사상가들이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식의 해석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17번 문항은 이런 문제점을 간과한 채 오로지 퍼즐 맞추듯 말의 피상적 논리만 판단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특정 인간학적 논제에 담긴 깊은 역사적, 철학적, 종교적, 문화적 의미를 무시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물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이 17번 문항에 대한 이의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스스로 잘못된 점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지독하게 폐쇄적인 우리 교육행정계의 기존 태도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말이다. 사실 올해 수능 국어 17번 문항을 두고 발생한 논란과 구설수는 단순히 하나의 시험문제에만 결부된 문제가 아니라 우리 초중고 교육계 교육 현실에 자리 잡은 고질적 문제를 드러낸다.
여기서 주입식 교육, 입시 위주 문제풀이 교육의 문제점을 다시 거론하고 싶지는 않다. 실상 한국의 현 교육 현실에서 별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적을 위한 지적, 비판을 위한 비판은 사태 개선에 별반 도움 될 것이 없다. 그리고 이 심각한 구조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육계가 국가의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점을 부정하기도 어렵다.
다만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점은 두 가지다. 첫째, 우리 교육계가 인문학, 특히 서구 인문학을 다룰 때 현학적 말장난과 심층적 사유를 적절히 분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우리 교육계가 교육현장에서 서구 사회와 사상을 다룰 때 그리스도교 인간이해의 중요성을 심히 과소평가한다는 점이다.
첫 번째 지적한 문제를 들여다보자. 피상적 의미구조 파악에만 천착하게 만드는 현재의 문제풀이 기술 배양 중심 교육은 수많은 ‘헛똑똑이’ 양산의 주된 요인이다. 진단을 위해 해석학자 폴 리쾨르(Paul Ricoeur)의 식견을 잠시 빌리겠다. 일단 모든 해석행위에는 해석자의 삶의 정황을 지배하는 이해 혹은 해석의 전통이 반영된다. 해석의 역사적 전통 가운데서는 하나의 이미지나 개념에 여러 고유한 의미들이 연결되는 다의적 상징들이 창조된다. 이 상징들 덕분에 특정 개념에 새로운 의미가 덧붙여지면서 전통이 현재의 창조적인 해석 안으로 녹아든다.
그렇지만 우리 교육체계는 지극히 협소한 해석 전통, 민족주의 전통만을 인정하며 모든 상징을 그 안에서만 생성해 내려고 한다. 민족주의의 범주를 벗어나는 모든 해석 전통과 상징 창조 가능성은 부차적인 수준을 넘어 사소한 것으로 취급된다. 이번 수능 국어 칸트 문항도 마찬가지다. 만일 해당 지문이 한민족의 역사 혹은 전통문화와 관련된 것이었다면 이런 식의 허술한 문항 출제가 허용되었을 리 없다. 문항이 요구하는 사고의 내용이 조금이라도 민족 정서에 어긋나거나 그것에 무지하다는 인상을 주면 대중의 집단적인 분노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식, 인격, 트랜스휴머니즘과 관련된 사안들은 현재 인류 전체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인공지능을 삶의 필수 파트너로 삼아야 하는 오늘날 학생들과 청년 세대 입장에서는 사실 민족전통 같은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이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서구 인간이해 전통과 깊게 연관된 까닭에 이 사안에 대한 심층적인 사유와 이해는 교육계에서 그리 중요한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일례로 2022년 교육부에서 잠깐이나마 인공지능 시대에 발맞춰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 개념을 강조한 적 있지만 3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막상 그 구체적 개념이 뭔지, 그것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 기본 수준이라도 숙지한 초중교 일선교사가 과연 전체 인원 가운데 10%나 될지 의심스럽다.
이번 수능 칸트 문항을 통해 드러난 우리 초중고 교육계의 두 번째 문제는 서구인들의 세계관과 인간이해를 소개할 때 그리스도교 인간학의 역사와 기여도를 애써 간과하려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우리 한국 현대사의 고달팠던 학문적 정황이 관여되어 있다. 우리가 서구인들의 사상과 삶의 태도를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던 것은 불과 200년도 되지 않는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서학 혹은 천주교 서적들이 국내에 유입되어 서구 사상과 기술에 대한 배움의 열의가 널리 퍼진 적 있지만 1801년 신유박해를 기점으로 그 열의는 처참하게 꺾여버렸다. 일제와 맺은 강화도조약을 통해 강제로 개항한 이후에야 비로소 서구 사상과 학문에 관한 연구의 길이 처음으로 열리기 시작했지만 일제강점기의 도래로 그 실낱같은 기회마저 대부분 사라지고 말았다. 식민지인들이 서구의 선진문물과 고차원적 인문학을 학습하기를 원치 않았던 조선총독부의 여러 제재와 규제 때문에 국내에서는 서구 인문학을 깊게 연구할 방안을 찾기 어려웠다.
서구 인문학 및 철학 연구의 길은 결국 해방과 한국전쟁이 지난 이후에 비로소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했다. 그나마도 그 교육기회를 붙든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여전히 우리 한민족이 보이지 않는 식민화의 굴레를 지고 있다고 생각한 진보성향 지식인들이었다. 이들은 서구 철학 및 사회과학을 수용할 때 그리스도교적 인간학 전통은 철저히 배제했다. 그 이유는 그것이 우리 민족의 유교적 인간이해 방식과 맞지 않고 민족의 중흥이나 정치적 진보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때마침 20세기 중후반 서구철학계의 동향도 실존철학을 거쳐 포스트구조주의의 발흥으로 빠르게 탈그리스도교적 성향을 보이던 차라 한국 지식인들이 서구철학을 무종교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한층 더 당연시되었다.
물론 서구 인문학계에서도 그리스도교 인간학의 영향력은 약화되다 못해 여러 방면에서 해체 위기를 맞이하는 중이다. 그러나 서구의 철학 및 인문학 연구자들은 적어도 역사적으로 그리스도교 인간학이 서구 철학사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 그리고 오늘날 자신들의 사유에 어떤 방식으로 근거를 마련해 주는지 부정하거나 간과하지 않고 오히려 그에 대해 면밀하게 연구한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교 인간학 전통을 오늘날 어떻게 새로운 의미로 되살리거나 변주하는 것이 우리 삶의 개선과 정신적 진보에 도움이 될지 고민하고 탐색한다. 한마디로 그들의 서구철학 이해는 근본이 있고 뿌리가 있다. 반면 우리 한국인들이 이해하는 서구의 사상과 철학은 공시적 차원으로도 피상적일뿐더러 통시적 차원에서는 더더욱 이해의 깊이가 없다. 여기에는 서구 철학과 인문학을 이해하는 데서 그리스도교 인간학의 지분과 기여도를 애써 간과해온 국내 연구자들의 잘못된 학문적 태도가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현 실정에서 우리의 입시 위주 주입식 교육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것은 무리다. 정부 당국자, 교사, 학부모, 그 어느 편에서도 여기에 도전할 의지도 대안도 찾아볼 수 없다. 한때 주입식 교육법의 대안으로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의 토론식 교육법이 각광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 선진국 교육계도 과도하게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정치적 올바름의 덫에 빠져드는 우를 범하는 것을 보면 토론식 교육법이라고 무조건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다. 그러니 우리 교육의 큰 틀은 그대로 두더라도 그 안에서 유효한, 세부적인 교육방침의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접근법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교육계가 지금까지 편집증적으로 붙들고 있던 국수주의적 자민족중심주의의 틀을 깨고, 우리에게는 ‘타자’인 서구인들의 사상, 문화, 그리고 삶의 방식과 태도에 대해 보다 면밀하게 이해할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누군가는 ‘과도한 서구중심, 백인 중심 세계관에 천착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 우리 교육계와 대중이 서구 사회와 역사, 사상을 이해하는 수준을 지켜보자면 우리는 그 서구중심, 백인 중심 세계관이 실제로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오로지 식민지 역사를 경험한 피해자 입장에서 지극히 피상적이고 감정적으로 그것을 대하고 있을 뿐이다.
프랑스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한때 고등학교 철학 과목 학습 의무화를 지켜내는 일에 전념하여 프랑스 국내에서 명성을 얻은 바 있다. 원래 프랑스에서는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에 철학 과목을 필수로 수강해야 했는데, 1975년 정부는 이를 선택과목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데리다를 비롯한 그와 뜻을 함께한 일단의 인문학 연구자들은 학계에서 구축한 모든 영향력을 총동원해 정부 정책에 저항했고 이 저항은 성공을 거두었다. 현재까지도 프랑스 고등학교에서는 마지막 해에 철학 과목을 필수로 수강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프랑스 교육계에서 하나의 자부심으로 통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프랑스인들이 그만큼 자신들의 인간이해 및 철학 전통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세계는,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서구 문명이 쌓은 힘을 통해 움직이고 있다. 서구인들 스스로도 일정한 지적 훈련을 통해야만 비로소 자신들의 삶을 움직이는 사고의 기원과 근거를 이해할 수 있건만, 하물며 서구인들과 전혀 다른 문화전통 안에서 살아온 우리 한국인들은 어떨까. 우리는 더더욱 오늘날 우리 삶의 정황과 조건들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서구의 문명과 사상, 그리고 신앙을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공교육 체계가 여기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윤리와 사상’과 ‘세계사’ 과목을 일반 선택 과목으로 지정하고 있는 현재의 고교 교육과정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세계사는 2009년까지, 그리고 윤리와 사상은 2014년까지 고교 교육과정에서 필수과목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학습 자율권을 보장하고 과도한 학습 부담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이 두 과목은 선택과목으로 지정되었고 그 결과 오늘날 우리는 청년 세대에서 무수한 철학 문맹과 역사 문맹들을 목격하고 있다. 실상 세계사와 윤리 과목이 필수과목으로 지정되어 있던 시기에도 그 교육내용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서구 역사와 사상 편으로 본다면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불만족스러운 내용마저도 숙지하지 못한 이들이 수두룩하다.
우리의 어린 세대, 그리고 청년 세대는 서구 문명과 사상의 힘에 이끌려 살아가면서도 그 힘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을 알아볼 기회조차 빼앗긴 가련한 세대다. 그러면서 수능 지문은 칸트를 소개하고 트랜스휴머니즘의 허실을 논한다. 게다가 해당 지문에 연결된 문항은 단지 말장난 능력을 테스트할 뿐이다. 올해 수능 국어 17번 문항 관련 논란은 오늘날 우리 어린 세대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한 한국 교육이 보여주는 한 편의 블랙 코미디다. 내년에는 또 어떤 씁쓸한 실상을 보여줄지 우려가 앞서지만 모쪼록 이번 논란을 통해 작은 부분에서라도 한국 초중고 공교육의 개선과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박욱주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수학했고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좁은문은혜교회 목사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와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리=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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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논란이 된 것은 국어영역 17번 문항이다. 이 문항에 연결된 지문은 칸트의 선험적 통각에 대한 통찰을 중심으로(지문에서는 선험적 통각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인격의 시간적 바다이야기비밀코드 지속성을 위해 영혼, 자기의식, 그리고 신체가 각각 기여하는 바를 논하고 있다. 이에 17번 문항은 마인드 트랜스퍼(mind transfer) 혹은 마인드 업로딩(mind uploading)이라는 트랜스휴머니즘 관련 논제를 중심으로 따로 갑과 을, 두 사람의 견해를 소개하며 5개의 예시 가운데 가장 적절한 진술을 고르라고 한다.
이 문제 바다신2게임 를 놓고 이충형 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과학철학 전공 교수는 “전공자지만 지문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만 20분 걸렸다”고 밝히며 해당 문제의 답이 심각한 해석상 오류를 내포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문제로 지목된 요인은 다음과 같다. 지문에 이어 17번 문항에 따로 배정된 갑과 을의 진술은 ‘의식을 스캔하여 프로그램으로 재현한 의식’의 인격 지속성을 판단할 때 ‘ 바다이야기APK 사고와 신체가 함께 기반이 된 인격의 지속성’만을 유념하고 있다. 그런데 답으로 지목된 3번 예시는 ‘칸트 이전 시대 영혼을 기반으로 삼는 인격의 지속성에 대한 이해’를 언급한다. 그러면서 적절한 의미상 연결고리 없이 칸트 이전 시대에 통용되던 종교적 인간이해 및 영혼론을 바탕으로 현대인인 갑과 을의 진술에 담긴 진리값(truth value)을 판정하고 있 야마토게임무료다운받기 다. 이에 이 교수는 17번 문항이 지문에 대한 철학사적, 종교적 이해를 배제한 채 오로지 눈앞에 보이는 텍스트의 피상적인 논리적 흐름만 파악할 것을 요구하는 ‘답 없는’ 문제로 규정한다.
일정한 철학사적 소양을 갖춘 이라면 이 교수의 지적이 타당하다는 것을 금새 알아차릴 것이다. 17번 문항의 갑과 을의 진술은 오늘날 물리주의적 인간이해 야마토게임예시 를 바탕으로 트랜스휴머니즘의 미래를 기대하거나 우려하는 현대인 입장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다. 반면 칸트 이전 시대에 인격의 지속성을 논한 이들(대표적으로는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그리고 데카르트)은 기본적으로 그리스도교 영혼론을 사유의 밑바탕으로 삼고 있다. 그러니 현대인의 입장을 담은 “사고하는 나의 지속”이라는 말을 칸트 이전 사상가들이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식의 해석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17번 문항은 이런 문제점을 간과한 채 오로지 퍼즐 맞추듯 말의 피상적 논리만 판단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특정 인간학적 논제에 담긴 깊은 역사적, 철학적, 종교적, 문화적 의미를 무시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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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주입식 교육, 입시 위주 문제풀이 교육의 문제점을 다시 거론하고 싶지는 않다. 실상 한국의 현 교육 현실에서 별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적을 위한 지적, 비판을 위한 비판은 사태 개선에 별반 도움 될 것이 없다. 그리고 이 심각한 구조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육계가 국가의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점을 부정하기도 어렵다.
다만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점은 두 가지다. 첫째, 우리 교육계가 인문학, 특히 서구 인문학을 다룰 때 현학적 말장난과 심층적 사유를 적절히 분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우리 교육계가 교육현장에서 서구 사회와 사상을 다룰 때 그리스도교 인간이해의 중요성을 심히 과소평가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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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우리 교육체계는 지극히 협소한 해석 전통, 민족주의 전통만을 인정하며 모든 상징을 그 안에서만 생성해 내려고 한다. 민족주의의 범주를 벗어나는 모든 해석 전통과 상징 창조 가능성은 부차적인 수준을 넘어 사소한 것으로 취급된다. 이번 수능 국어 칸트 문항도 마찬가지다. 만일 해당 지문이 한민족의 역사 혹은 전통문화와 관련된 것이었다면 이런 식의 허술한 문항 출제가 허용되었을 리 없다. 문항이 요구하는 사고의 내용이 조금이라도 민족 정서에 어긋나거나 그것에 무지하다는 인상을 주면 대중의 집단적인 분노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식, 인격, 트랜스휴머니즘과 관련된 사안들은 현재 인류 전체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인공지능을 삶의 필수 파트너로 삼아야 하는 오늘날 학생들과 청년 세대 입장에서는 사실 민족전통 같은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이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서구 인간이해 전통과 깊게 연관된 까닭에 이 사안에 대한 심층적인 사유와 이해는 교육계에서 그리 중요한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일례로 2022년 교육부에서 잠깐이나마 인공지능 시대에 발맞춰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 개념을 강조한 적 있지만 3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막상 그 구체적 개념이 뭔지, 그것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 기본 수준이라도 숙지한 초중교 일선교사가 과연 전체 인원 가운데 10%나 될지 의심스럽다.
이번 수능 칸트 문항을 통해 드러난 우리 초중고 교육계의 두 번째 문제는 서구인들의 세계관과 인간이해를 소개할 때 그리스도교 인간학의 역사와 기여도를 애써 간과하려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우리 한국 현대사의 고달팠던 학문적 정황이 관여되어 있다. 우리가 서구인들의 사상과 삶의 태도를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던 것은 불과 200년도 되지 않는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서학 혹은 천주교 서적들이 국내에 유입되어 서구 사상과 기술에 대한 배움의 열의가 널리 퍼진 적 있지만 1801년 신유박해를 기점으로 그 열의는 처참하게 꺾여버렸다. 일제와 맺은 강화도조약을 통해 강제로 개항한 이후에야 비로소 서구 사상과 학문에 관한 연구의 길이 처음으로 열리기 시작했지만 일제강점기의 도래로 그 실낱같은 기회마저 대부분 사라지고 말았다. 식민지인들이 서구의 선진문물과 고차원적 인문학을 학습하기를 원치 않았던 조선총독부의 여러 제재와 규제 때문에 국내에서는 서구 인문학을 깊게 연구할 방안을 찾기 어려웠다.
서구 인문학 및 철학 연구의 길은 결국 해방과 한국전쟁이 지난 이후에 비로소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했다. 그나마도 그 교육기회를 붙든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여전히 우리 한민족이 보이지 않는 식민화의 굴레를 지고 있다고 생각한 진보성향 지식인들이었다. 이들은 서구 철학 및 사회과학을 수용할 때 그리스도교적 인간학 전통은 철저히 배제했다. 그 이유는 그것이 우리 민족의 유교적 인간이해 방식과 맞지 않고 민족의 중흥이나 정치적 진보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때마침 20세기 중후반 서구철학계의 동향도 실존철학을 거쳐 포스트구조주의의 발흥으로 빠르게 탈그리스도교적 성향을 보이던 차라 한국 지식인들이 서구철학을 무종교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한층 더 당연시되었다.
물론 서구 인문학계에서도 그리스도교 인간학의 영향력은 약화되다 못해 여러 방면에서 해체 위기를 맞이하는 중이다. 그러나 서구의 철학 및 인문학 연구자들은 적어도 역사적으로 그리스도교 인간학이 서구 철학사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 그리고 오늘날 자신들의 사유에 어떤 방식으로 근거를 마련해 주는지 부정하거나 간과하지 않고 오히려 그에 대해 면밀하게 연구한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교 인간학 전통을 오늘날 어떻게 새로운 의미로 되살리거나 변주하는 것이 우리 삶의 개선과 정신적 진보에 도움이 될지 고민하고 탐색한다. 한마디로 그들의 서구철학 이해는 근본이 있고 뿌리가 있다. 반면 우리 한국인들이 이해하는 서구의 사상과 철학은 공시적 차원으로도 피상적일뿐더러 통시적 차원에서는 더더욱 이해의 깊이가 없다. 여기에는 서구 철학과 인문학을 이해하는 데서 그리스도교 인간학의 지분과 기여도를 애써 간과해온 국내 연구자들의 잘못된 학문적 태도가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현 실정에서 우리의 입시 위주 주입식 교육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것은 무리다. 정부 당국자, 교사, 학부모, 그 어느 편에서도 여기에 도전할 의지도 대안도 찾아볼 수 없다. 한때 주입식 교육법의 대안으로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의 토론식 교육법이 각광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 선진국 교육계도 과도하게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정치적 올바름의 덫에 빠져드는 우를 범하는 것을 보면 토론식 교육법이라고 무조건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다. 그러니 우리 교육의 큰 틀은 그대로 두더라도 그 안에서 유효한, 세부적인 교육방침의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접근법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교육계가 지금까지 편집증적으로 붙들고 있던 국수주의적 자민족중심주의의 틀을 깨고, 우리에게는 ‘타자’인 서구인들의 사상, 문화, 그리고 삶의 방식과 태도에 대해 보다 면밀하게 이해할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누군가는 ‘과도한 서구중심, 백인 중심 세계관에 천착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 우리 교육계와 대중이 서구 사회와 역사, 사상을 이해하는 수준을 지켜보자면 우리는 그 서구중심, 백인 중심 세계관이 실제로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오로지 식민지 역사를 경험한 피해자 입장에서 지극히 피상적이고 감정적으로 그것을 대하고 있을 뿐이다.
프랑스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한때 고등학교 철학 과목 학습 의무화를 지켜내는 일에 전념하여 프랑스 국내에서 명성을 얻은 바 있다. 원래 프랑스에서는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에 철학 과목을 필수로 수강해야 했는데, 1975년 정부는 이를 선택과목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데리다를 비롯한 그와 뜻을 함께한 일단의 인문학 연구자들은 학계에서 구축한 모든 영향력을 총동원해 정부 정책에 저항했고 이 저항은 성공을 거두었다. 현재까지도 프랑스 고등학교에서는 마지막 해에 철학 과목을 필수로 수강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프랑스 교육계에서 하나의 자부심으로 통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프랑스인들이 그만큼 자신들의 인간이해 및 철학 전통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세계는,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서구 문명이 쌓은 힘을 통해 움직이고 있다. 서구인들 스스로도 일정한 지적 훈련을 통해야만 비로소 자신들의 삶을 움직이는 사고의 기원과 근거를 이해할 수 있건만, 하물며 서구인들과 전혀 다른 문화전통 안에서 살아온 우리 한국인들은 어떨까. 우리는 더더욱 오늘날 우리 삶의 정황과 조건들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서구의 문명과 사상, 그리고 신앙을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공교육 체계가 여기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윤리와 사상’과 ‘세계사’ 과목을 일반 선택 과목으로 지정하고 있는 현재의 고교 교육과정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세계사는 2009년까지, 그리고 윤리와 사상은 2014년까지 고교 교육과정에서 필수과목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학습 자율권을 보장하고 과도한 학습 부담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이 두 과목은 선택과목으로 지정되었고 그 결과 오늘날 우리는 청년 세대에서 무수한 철학 문맹과 역사 문맹들을 목격하고 있다. 실상 세계사와 윤리 과목이 필수과목으로 지정되어 있던 시기에도 그 교육내용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서구 역사와 사상 편으로 본다면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불만족스러운 내용마저도 숙지하지 못한 이들이 수두룩하다.
우리의 어린 세대, 그리고 청년 세대는 서구 문명과 사상의 힘에 이끌려 살아가면서도 그 힘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을 알아볼 기회조차 빼앗긴 가련한 세대다. 그러면서 수능 지문은 칸트를 소개하고 트랜스휴머니즘의 허실을 논한다. 게다가 해당 지문에 연결된 문항은 단지 말장난 능력을 테스트할 뿐이다. 올해 수능 국어 17번 문항 관련 논란은 오늘날 우리 어린 세대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한 한국 교육이 보여주는 한 편의 블랙 코미디다. 내년에는 또 어떤 씁쓸한 실상을 보여줄지 우려가 앞서지만 모쪼록 이번 논란을 통해 작은 부분에서라도 한국 초중고 공교육의 개선과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박욱주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수학했고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좁은문은혜교회 목사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와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리=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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