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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출신 야생 동물 다큐멘터리 촬영 감독이자 사진작가·프로듀서인 버티 그레고리(31)가 황제펭귄을 촬영하고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디즈니+


수백 마리의 새끼 황제펭귄 무리가 남극 대륙의 빙붕(氷棚·바다 위에 떠 있는 얼음덩어리) 절벽 끝에서 길을 잃고 멈춰 섰다. 생애 첫 수영을 앞둔 6개월 안팎의 어린 펭귄들이다. 통상 펭귄이 서식 법무사 지에서 바다로 뛰어들 때 그 높이가 60cm. 그런데 이들의 눈앞에는 15m 높이의 낭떠러지뿐. 멀뚱멀뚱 절벽 아래만을 보며 오도 가도 못 하고 있다.
그때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우두머리 한 마리가 용감하게 바닷속으로 몸을 던진 것. 이어 하나둘 까마득한 수면을 향해 낙하한다. 회색빛 점 같은 수백 마리의 새끼 펭귄이 공중에서 흩어졌다 부동산담보대출한도 . 수면에 흰 포말을 흩뿌리는 장면은 장관을 넘어 경이에 가깝다.



버티 그레고리는 최근 우리나라의 야생동물 촬영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본지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이 모습은 영화 ‘타이타닉 연체자 ’ ‘아바타’ 등으로 잘 알려진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 지난 4월 디즈니+에공개된 ‘펭귄의 비밀’ 3부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이 장면을 세계 최초로 카메라 앵글에 담아낸 사람은 영국 출신 야생 동물 다큐멘터리 촬영 감독이자 사진작가·프로듀서인 버티 그레고리(31)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소속 탐험가인 그는 2020년 최연소 글로벌취업지원 로 영국 아카데미상 촬영상을 받은 데 이어 지난해 에미상 2관왕을 차지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협회는 펭귄의 보전과 이해를 도운 공로를 인정해 그에게 ‘올해의 탐험가상’을 수여했다.
-2개월간 황제펭귄 군락지 옆에서 살았다고요. 위험한 순간은 없었나요?
“눈보라가 불어닥친 적이 있어요. 어디가 하늘이고 땅인지 분간도 안 됐 사업자대출한도 죠. 결국 캠프로 후퇴했는데 칼날 같은 눈 폭풍에 텐트 8개 중 5개가 찢어지고 남은 텐트도 눈에 뒤덮여버린 거예요. 겨우 기지로 피신해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6일을 보내다 촬영에 복귀했어요. 무서운 순간이었죠.”
그에게 ‘극한 환경’은 익숙하다. 해류가 강한 갈라파고스 지역에서 바다이구아나를 촬영할 땐 약 3m 높이 파도에 휩쓸렸는데 한 손에 카메라를 쥔 채 다른 손으로 간신히 바위에 매달려 살았다. 남극 엘리펀트섬에서 참고래 무리를 촬영할 땐 몸을 가누기 힘든 허리케인급 강풍 속에서 6주를 버텼고, 빙산과 해빙이 떠다니는 바다에 얇은 잠수복만 입고 뛰어들었다. 영화 ‘죠스’의 주인공이기도 한 백상아리 촬영을 위해 철창 등의 안전장치 없이 맨몸으로 잠수하기도 했다.



버티 그레고리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한국 편은 야생동물뿐 아니라 동물을 위하는 ‘사람 이야기’까지 담고 있어 특별하다”고 했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어째서 그렇게까지?
“밀렵과 서식지 파괴, 기후 변화 등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 야생 동물의 상황을 알리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이 말도 덧붙였다. “무엇보다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만큼 야생 동물이 제게는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워요.”
콘크리트 정글에도 동물이 산다
그레고리는 최근 우리나라의 야생동물 촬영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에미상 수상작 ‘버티 그레고리의 애니멀 클로즈업’(2023)의 새로운 시리즈로 내년 초 공개가 예정돼 있다. 그는 어떤 동물을 찍는지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 다만, “메인으로 3종을 다루고 있다”며 “이번 한국 편은 야생동물뿐 아니라 동물을 위하는 ‘사람 이야기’까지 담고 있어 특별하다”고 했다.
-촬영 장소는 어디인가요.
“남쪽 끝 제주도와 본토, 그리고 북쪽 경계선(DMZ)까지 전부요. 서울 중심부를 다루는 이야기도 포함돼 있죠.”
-서울이요?
“서울 같은 ‘콘크리트 정글’에서 동물이 사람과 어떻게 공존하는지, 우리가 자연을 위해 도시 공간을 어떻게 내어줄 수 있는지 담고 있어요.”
그는 “서울에서 촬영하면서 10대 시절이 떠올랐다”며 “그때 기억을 끄집어내 촬영에 활용하고 있는데 멀리 한 바퀴를 돌아 내 뿌리를 되찾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는 10대 시절 도시에서 야생 동물을 많이 찍었다고 한다. 10대 소년이 오지를 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으니까. 집 근처 농장에 있던 여우·오소리 등을 촬영했다. 특히 도시의 야생 동물인 ‘송골매’에 매료됐다고. 그는 17세 때 야생 동물을 찍은 사진으로 영국의 아웃도어 전문 잡지가 주최하는 국제 공모전에서 ‘올해의 청소년 아웃도어 사진작가’로 선정됐다.



갈라파고스에서 물개를 촬영하고 있는 버티 그레고리. /내셔널지오그래픽·디즈니+


-어릴 때부터 동물과 자연에 관심이 많았네요.
“부모님과 바다에 자주 갔던 영향이 커요. 저는 두 살 때부터 서핑을 하고 수영을 하고 요트를 탔죠. 이 덕인지 추위나 파도, 물속, 비가 퍼붓는 촬영 현장에서도 편안해요.”
그레고리는 영국 런던에서 서쪽으로 약 190km 떨어진 브리스톨시(市)의 브리스톨대에서 동물학을 전공했다. “브리스톨이 야생 동물 다큐멘터리 촬영지로 유명해 이 대학을 택했다”고 했다. BBC 다큐멘터리 제작 본부가 있는 브리스톨시는 절벽·초지 생태계가 조성된 도심 속 협곡, 근교에 있는 람사르 습지 하구 덕에 ‘자연 다큐의 메카’로 불린다. “수업을 마치면 대학 근처 제작사나 촬영지를 찾아가 촬영 장면을 직접 보며 공부했어요.”
-사진이 아닌 동물학을 전공했네요.
“야생을 제대로 찍으려면 먼저 대상을 알아야 했거든요. 세계 최고 장비나 촬영 기술이 있어도 소용없어요. 동물을 어떻게 찾아내는지, 어떻게 놀라게 하지 않고 접근할지, 동물의 다음 행동은 무엇일지 예측하는 것이 핵심이죠.”



갈라파고스 지역에서 바다이구아나를 촬영 중인 버티 그레고리. /내셔널지오그래픽·디즈니+





인도네시아에서 쥐가오리를 촬영 중인 버티 그레고리. 육해공을 가리지 않는다. /내셔널지오그래픽·디즈니+


야생 동물밖에 모르는 남자
2014년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이튿날 남미 파타고니아로 향했다. 호랑이·퓨마 촬영으로 세계에 이름을 알린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작가 스티브 윈터의 퓨마 촬영 현장에 합류하기 위해서였다.
-동물의 생활을 굳이 알 필요 있느냐는 지적도 있어요.
“그렇지 않아요. 펭귄과 같은 야생 동물이 위기에 처했다는 건 곧 바다와 자연이 위기에 놓였다는 의미이고 결국 인간 역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얘기죠.”
-어째서요?
“생태계의 건강(회복 탄력성)은 인간의 생존 기반이에요. 물을 정화하고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 습지나 강, 숲 등이 사라지면 홍수와 가뭄이 심각해지고 결국 인간에게 피해가 돌아오죠. 건강한 지구가 곧 건강한 동물이고, 건강한 인간입니다.”
-본인 다큐멘터리의 특별한 점이라면요.
“‘클로즈 업’ 시리즈를 예로 들면, 이건 야생 동물 프로그램이면서 동시에 모험의 기록이에요. 동물을 찾기까지의 좌충우돌, 실패와 재시도, 현장에서의 솔직한 감정까지. 그 과정이 시청자에게 더 리얼한 감정을 전달하죠.”
그는 ‘있는 그대로의 야생’을 포착하기 위해 드론과 수중 카메라, 특수 다이빙 장비 등 첨단 장비를 활용한다. 상공에서 담아낸 펭귄 군락과 범고래 무리, 고래의 사냥 장면, 남극·갈라파고스에서 돌고래 등을 촬영한 영상이 이렇게 탄생했다.
-사람을 멀리하는 건 아니죠?
“아니에요(웃음). 자연과 인간은 분리된 게 아니에요. 하나를 사랑하면 다른 하나도 함께 사랑하게 되는 상호보완적 관계라고 생각해요. 결국 우리도 ‘야생 동물’이잖아요. 야생성이 조금 덜할 뿐이죠.”



버티 그레고리가 파타고니아 퓨마를 촬영하기 위해 삼각대를 매고 이동하고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디즈니+





마침내 파타고니아 퓨마 촬영에 성공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디즈니+





버티 그레고리가 촬영한 파타고니아 퓨마. /내셔널지오그래픽·디즈니+


자연과 단절된 현대 사회
-야생 동물에게 접근하는 게 위험하진 않나요?
“야생 동물이 사람을 공격하는 건 드문 일이에요. 공격하더라도 1000번 중 999번은 인간이 잘못 행동해 동물이 자기 방어에 나서는 경우고요. 물론 동물 행동에 전문성을 갖고 접근해야죠.”
-야생 동물 다큐멘터리의 힘은.
“현대 사회는 자연과 너무 단절돼 있어요. 야생 동물 다큐멘터리는 사람과 자연을 다시 연결하는 힘을 가지고 있죠. 우리 사회에서 잊히는 가치를 동물에서 찾을 수도 있어요. 서로 의지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새끼 황제펭귄의 모습에서 연대 의식을 떠올릴 수 있는 것처럼요.”
자연이 멀게만 느껴지는 현대인이 도심에서 야생 동물을 볼 수 있는 방법이 뭔지 물었다. 그가 씨익 웃더니 답했다. “하늘을 보세요(Look up). 사람들은 발만 보고 다니느라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아요. 우리 주변에 이미 많은 야생 동물이 존재한답니다.”